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꿈과 현실을 오가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 어린 시절 경험했던 반복적인 학대와 고통이 다양한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나타나는 사람, 매일 환각 증세를 경험하거나 여러 인격체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 그리고 복합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겨우겨우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 이들은 과연 어떻게 삶을 버텨내고 있을까?

독일에서 화제인 책 <내 안에는 여러 사람이 살고 있다!(Eine Bonnie kommt niemals allein)>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고 있는 스물네 살 여성의 이야기다.
“우리는 ‘보니’입니다. 우리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는데요.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다중 인격’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니는 우리가 함께 결정한 별명입니다. 한 몸을 공유하는 우리 가운데 누구도 실제로 보니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보니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완전한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보니입니다.”

책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독자들은 여러 인격체가 하나의 몸을 공유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이 얼마나 깊은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지 깨닫게 되면서 절망하고, 다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재치 있고 유머 넘치는 문장에 웃음 짓는다.

전 세계적으로 ‘당사자 문학’이라고 해서 상처와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로 풀어 쓴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일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소개해 주목받고 있다. 저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12만 명의 팔로어와 소통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리성 정체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억 상실, 실신, 그리고 극심한 감정 기복으로 인한 혼란 등을 반복하다가 저자는 18세가 돼서야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됐다. 한 사람 안에 다른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여러 인격체가 번갈아 지배권을 가지며, 서로 갈등하고 다른 인격체를 부정한다.

한 사람이지만 여러 사람인 셈이고, 나이와 성별, 관심사, 능력, 이름이 다른 존재들이 몸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다. 저자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갖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심각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 반응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짐을 여러 사람을 통해 나눠서 지기 시작했다. 오랜 폭력과 학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생존 메커니즘으로 자기 자신을 분리했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떤 존재가 진짜 삶의 주인일까? 다른 인격체와 몸과 삶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으면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 책은 혼란의 시기를 거쳐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된 정신질환자의 인상적인 고백이다.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하는 이야기로, 정신질환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