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장마철에 만나는 고전문학 속 음악들
내게는 장마철이 독서의 계절이다. 비 내리는 저녁, 시골 마을이라 더 그렇겠지만 빗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밤벌레도 길고양이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주로 읽는 책은 고전문학으로, 오래전에 한 번씩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것들이다. 요 며칠 동안에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장맛비 소리 때문인지 가끔 들리는 천둥소리 때문인지 소설 속 인물들의 심경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 <설국>은 시종일관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더위를 잊는 데도 제격이다.

재미있는 건 고전을 읽으면서 새삼 뜻밖의 음악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올 바이 마이 셀프’를 부른 팝가수 에릭 카먼의 노래 중에 ‘보트 어게인스트 더 커런트’(조류를 거스르는 배)라는 게 있다. 비장미 넘치는 구조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어린 시절에는 가사의 의미도 모른 채 한껏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제목은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J 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었을 땐 끄트머리 부분에 언급된 노래 하나가 몹시 궁금했다. 주인공의 어린 여동생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장면에서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라는 곡이 흐른다. 재즈풍의 연주라고 묘사돼 있는데 번역이 어색한 건지, 우스꽝스러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이 곡이 내가 애청하는 재즈 스탠더드라는 걸 알았고 제목은 ‘스모크 게츠 인 유어 아이스’다. 이 곡은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트럼펫 연주자인 클리퍼드 브라운과 현악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게 으뜸이다. 우수에 젖은 나팔 소리에 가을 냄새가 물씬하고 마른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다. 작가는 그런 운치 있는 분위기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런 음악을 알고 소설을 읽는다면 장면을 더 실감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이런 식으로, 마치 소설의 사운드트랙처럼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노르웨이 숲(상실의 시대)>에서 비틀스와 브람스 교향곡 4번이 화제가 됐고 <1Q84>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유행시켰다.

재즈 애호가인 내가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다. 이 작품 속에는 재즈, 특히 빠른 템포의 비밥 재즈가 전편에 흐른다. 찰리 파커의 ‘나우 더 타임’ ‘핫 하우스’가 대표적인 곡이다. 작가인 케루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히치하이킹과 막노동 일당만으로 7년이나 길 위에서 보냈다. 긴 여행을 끝내고 5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단 3주 만에 36미터의 타자지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런 (비밥 재즈 같은) 속도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면 굉장한 능력 아닌가! 그런 즉흥성이 바로 재즈다. <길 위에서>에는 비 내리는 뉴올리언스의 장면도 나온다. ‘슬픈 회색의 비’라는 묘사는 주인공의 무기력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고 있는 요즘 같은 날씨가 그런 분위기가 아닐지.

장마철 지루하게 내리는 비에 갇혀 지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럴 때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작업실 책상보다 한결 분위기가 난다. 낮은 갓등을 켜고 커피를 마시고 과자도 집어 먹는다. 책 속에 숨어 있는 음악까지 찾아 들으니 더 빠져든다. 빗소리가 세상의 소란을 차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