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축구인 자서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를 꼽으라면 밤새워 논쟁을 벌여도 일치된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후보엔 네 명이 반드시 낀다. 펠레, 마라도나, 호날두, 메시다. 지난해 영국 축구 전문잡지 포포투가 1위 메시, 2위 펠레, 3위 마라도나, 4위 호날두로 선정했다가 브라질 축구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 최고 선수론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이 각축을 벌인다.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은 이들은 대단한 기량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냈다는 점이다. 이들뿐이 아니다. 베켄바워, 호나우두, 베컴, 레반도프스키, 홍명보, 안정환, 이영표 등 이름 날린 축구선수들도 하나같이 자서전을 펴냈다. 25세인 음바페는 근 3년 전 만화 자서전을 내놓기도 했다. 히딩크, 퍼거슨, 벵거, 클롭, 과르디올라 등 유명 축구 감독들도 자서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축구계에서 자서전이 보편화한 것은 출판사들의 끈질긴 제의와 스타 감독·선수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응원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를 담은 일부 자서전은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축구 행정가 중에서도 자서전을 펴낸 이들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지낸 주앙 아벨란제와 제프 블라터가 대표적이다. 특히 스위스 국적의 블라터는 2015년 뇌물 수수 등 부패 혐의로 물러난 뒤 펴낸 자서전에서 스위스 정부로부터 비밀 업무를 받고 부룬디 대통령을 축출하려 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최근 자서전 <축구의 시대>를 내놨다. 경영인과 축구인으로서의 고민과 결정 등을 담았다지만 SNS에선 협회장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목적 아니냐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올 들어 아시안컵 우승 불발, 파리올림픽 진출 무산, 대표팀 감독에 대학 후배인 홍명보 선임 등으로 인해 커지고 있는 사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차원 아니냐는 얘기다.

한발 더 나가 내년 1월 협회장 4연임을 염두에 둔 출간이란 해석까지 나온다. 축구인이 자서전을 내놓고 오히려 논란이 커지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