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증여받아" 주장했으나 법원 "예금 타낼 권한 없어"
형제 사망 사실 속이고 예금 9억원 가로챈 60대 징역 2년
형제의 사망 사실을 속이고 망인 명의로 예금청구서를 작성해 금융기관을 속여 9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가로챈 6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A(61)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9년 4월 13일 숨진 B씨의 동생인 A씨는 이틀 뒤 금융기관을 찾아 B씨의 도장을 이용해 B씨 명의로 된 예금청구서를 위조한 수법으로 금융기관을 속여 9천만원을 가로챘다.

이 같은 수법으로 나흘간 4차례에 걸쳐 총 8억9천900여만원을 금융기관으로부터 타냈다.

A씨 측은 법정에서 "B씨가 생전에 예금을 증여했고, 이를 인출하여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며 부인했다.

재판부는 실제로 B씨가 유일한 상속인인 자녀에게 상속 포기를 요구한 사실과 B씨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A씨가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알 도리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A씨 측 항변을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설령 B씨가 생전에 예금채권을 A씨에게 증여하기로 약정하거나 예금 인출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증여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사망한 이상 A씨가 곧바로 망인 명의 예금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망인의 사망으로 위임관계는 종료되고, 대리권이 소멸하므로 사망 이후 예금청구서를 작성·행사할 권한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들인 금융기관으로서는 망인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면 법정상속인이 아닌 A씨에게 예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테고, A씨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망인이 직접 예금인출을 청구하는 것처럼 돈을 타냈다고 봤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과 피해 금액 등에 비추어 죄책이 무거운데도 피해자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피해 보상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했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범행의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면서 대체로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범행 경위에 일부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실제로 6억원은 망인의 세금 납부 등의 용도로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징역 3∼6년)의 하한을 다소 벗어난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