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서 조태열 장관 인사 피한 北대사
북 '적대적 2국가' 선언후 나온 국제회의…냉랭한 남북관계 확인
북한이 지난해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뒤 참석한 장관급 다자회의에서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고스란히 확인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6~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 계기에 리영철 주라오스대사와 마주쳐 말을 건넸지만 싸늘한 반응만 맞닥뜨렸다.

아세안 회의 일환으로 27일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북한이 사실상 유일하게 참가하는 역내 장관급 다자안보협의체로, 올해도 외무상 대신 대사급이 파견됐다.

26일 의장국 주최 갈라 만찬에서 조 장관은 리 대사를 인지한 뒤 그에게 다가가 팔을 살포시 잡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리 대사는 정면만을 꼿꼿이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약 3초간의 '무반응' 끝에 조 장관은 결국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는 북한이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뒤 남북 외교 당국자가 공개적인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대화에 열려있다는 한미 입장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조 장관은 만찬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북측) 반응이 있어야 대화하죠"라며 "반응이 없어서 대화도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앞서 그는 라오스에 도착한 날 취재진에 북측 대표단과 마주칠 가능성에 "(북한측이) 대화에 응할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대화를 하게 되면) 대화에 열려 있단 입장을 밝히면서 그간 불법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러시아와 밀착·군사협력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리 대사의 인사 거부와 관련해 "북한 외교관은 남북관계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반응하는 게 달랐다"며 "지금은 (남북관계가) 극도로 안 좋은 상황이니 아마도 평양에서 그런 경우엔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ARF 계기 만찬 등은 남북이 조우해 짧은 대화를 나누거나 최소 인사는 교환하는 계기로 삼곤 했지만, 북한이 작년 말 적대적 대남기조로 전환한 이후 일체 접촉을 피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2022년 행사 당시엔 박진 외교부 장관이 북한 안광일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겸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만나 조건 없는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안 대사는 '여건 조성이 먼저'라고 답하는 등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 '노딜'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여파로 ARF에 외무상 대신 대사급을 수석대표로 보내는 기조를 2019년 이래 올해로 6년째 이어가게 됐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선희 외무상의 불참 배경에 대해 "와봐야 계속 공격과 비판의 대상일 것"이라며 "과거에 쭉 왔으면 관성적으로 왔을 텐데 오히려 안 오는 것이 정상이고 오는 것이 이례적인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안 오기로 했다면 특별한 사정에 변화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으니까 그럴 것이고 와봐야 편치 않을 거니까 안 온 거 아닌가"라고 추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