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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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보다 못한 낮은 순위

어릴 적 개는 마당에서 키웠다. 큰 나무 밑에 개 집이 있고 항상 묶여 있었다. 나는 별로 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개는 내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좋아했다. 가끔 먹던 감자나 고구마를 던져 주면 받아 먹던 기억이 전부다. 초등학생이던 딸이 강아지를 사왔다.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마당이 없는 아파트다. 울며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겠다”는 딸을 이길 수 없어 개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개와 한 집에 살게 된 것이 이제 20년이 되어 간다.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이지만, 아직도 개들은 내 옆에 앉지 못한다.

큰 딸이 키우던 강아지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이 불편했지만 정이 많던 강아지였다. 처음 데려올 때, 동물병원에서 1~2년 살면 오래 산다고 했는데 11년을 살고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 이 강아지가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죽고 한 달이 되지 않아 딸이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경비견인 미니핀과 귀여운 말티즈의 혼합종으로 주인을 엄청 좋아하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주인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짖고 물기까지 한다. 이 강아지는 개 집이 아닌 꼭 침대에서 잠을 잔다.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 보다가 이제는 풀밭에서만 본다. 먹는 것은 사료만 주면 거의 먹지 않는다. 1주일에 2번 목욕을 시켜줘야만 한다. 주인이 소파에 앉으면 옆에 앉아 타인이 주변에 오는 것을 싫어한다. 주인이 식사를 하면 무릎 위로 뛰어 올라가 먹는 것을 지키며, 타인의 근접을 거부한다. 주인이 나가면 무조건 따라 나가려 한다. 분명 큰 딸이 데려왔지만, 현재 주인은 아내다.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아지에게는 식구 순위가 있다. 1순위가 주인인 아내고, 2순위가 딸이다. 아내 옆에 꼭 붙어있는 강아지를 3순위인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개가 아내와 함께 잠 자고, 아내가 무엇인가 먹으면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다. 강아지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가 보다. 침대에서, 밥 먹는 의자 옆에서 3순위인 나는 항상 1, 2순위에게 밀린다. 단지 옆에 있다는 이유로 피할 때까지 짖거나 물려고 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아내와 딸의 즐거워하는 행동을 보면 나는 분명 강아지 보다 낮은 순위다. 강아지를 더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나의 1순위는 누구인가?

33개월 손녀는 어른이 하는 말을 모두 따라한다. 제법 자기 주장도 강해, 하고 싶은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손녀에게 가장 끔찍한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이다.
손녀는 배시시 웃으며 ‘둘 다 좋다’고 한다. 잠 자기를 싫어하는 손녀가 몸이 아플 때 찾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가장 오랜 시간 대부분 자신의 곁에 엄마가 있으니 의지하는 탓일까? 손녀는 주변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하다. 자신에게 오랜 기간 잘해준 사람이 1순위다.

과장 승진자 과정에 강사로 초청 받았다. 입사 7년차부터 15년차까지 어느 정도 근속의 폭이 있었고, 직장을 3번 옮긴 참석자도 있었다. 강의 중 인간 관계 관련 사례가 있어 ‘직장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5명을 이름을 제외하고 관계(선배, 상사, 동료 등)와 이유만 적으라고 했다. 5명이라고 하니 꼭 5명을 적어야 하느냐 묻는다. 더 적을 수 있지만, 우선순위로 적어 달라고 했다. 5명이 되지 않는다며 2명뿐이라고 한다. 전 직장의 관계도 포함된다고 했지만, 5명이 안된다고 한다. 최대한 5명을 적고 없으면 마음 속에 간직된 사람만 적어 달라고 했다.
30여명의 참석자 중 1순위는 선배였고, 2순위가 상사, 3순위가 CEO였다. 동료와 후배 중에는 좋아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존경이라는 단어의 의미 탓인지 거의 없었다. 존경의 이유로는 높은 전문성,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되는 언행, 인정과 칭찬하는 행동, 소통 능력이었다.
회사에서 나의 1순위는 누구인가? 혹시 인정과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대인관계는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구축-유지-활용이다. 직책과 연령에 따라 각 단계별 중요성이 달라진다. 가장 어려운 것은 활용이다. 대부분 활용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인가? 인간관계를 활용한다는 생각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생각하면 친할수록 더 편하게 부탁한다. 어떻게 그 단계까지 갈 것인가? 어떻게 요청 내지는 부탁할 것인가? 무엇을 부탁할 것인가?

부탁의 전 단계는 유지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유지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소 잘하라고 한다. 관계 유지를 위해 무엇을 잘해야 하는가?
조금은 냉정하지만, 지인 리스트에 등급이 매겨져 있다. 금전과 같은 아쉬운 부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구분했는데, 95% 이상은 금전 부탁을 하지 않는 등급이다. 5% 미만의 높은 등급은 매일 메일을 보내고 한 달에 한번 개별 연락을 한다. 생일은 반드시 축하한다. 자주 만나거나 통화를 해야만 한다. 멀어지면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거나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자신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지 못함을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퇴직 후 주변 사람들을 정리하고, 조금은 좁은 관계 관리를 하라고 한다. 과연 옳은 판단일까?
나이 들어 멀리 가지 못하는 몸이 되었을 때, 전화와 문자 하나 없고 거실과 안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두렵지 않은가? 결국 유지의 비결은 열린 마음과 노력 아닐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미운 사람보다 더 슬픈 사람은 잊혀진 사람 아닐까?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석환 대표(홍석환의 HR전략 컨설팅, no1g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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