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복면과 두건을 쓴 성화 봉송자가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에게 성화를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복면과 두건을 쓴 성화 봉송자가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에게 성화를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은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 달나라를 소재로 한 최초 공상과학(SF) 영화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의 작품뿐 아니라 캉캉, 미니언즈, 셀린 디옹, 오페라의 유령,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캉토로프 등 문화예술계에서 한 획을 그은 콘텐츠가 세계인의 축제를 채웠다.

여러콘텐츠 중에서도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일으킨 건 따로 있었다. 보트를 타고 나타나 파리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날렵하게 이동하던 ‘복면 주자’의 정체였다. 게임업계에선 이 복면 주자가 모험·잠입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주인공인 ‘아르노’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게임 속 암살자인 아르노의 행동과 복장이 복면 주자와 닮았을 뿐 아니라 게임이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똑같다는 얘기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는 프랑스 게임사 유비소프트가 2014년 출시한 게임이다. 18세기 말 파리에서 암약한 가상의 암살단을 배경으로 한다. 아르노는 게임에서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등에 참여하거나 부패한 귀족들을 처단하며 역사 속의 일원이 된다. 담을 뛰어 넘거나 건물 사이를 오가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파쿠르’를 하는 아르노의 모습은 파리 올림픽의 봉화 주자의 행동과도 흡사하다.
프랑스 유비소프트의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유비소프트 및 스팀 제공
프랑스 유비소프트의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유비소프트 및 스팀 제공
유비소프트는 실제로도 프랑스 문화에 기여한 정보기술(IT) 업체로 평가 받는다. 이 게임사는 게임 속 배경을 철저히 고증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를 만들 때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가상 그래픽으로 재현하고자 사진 촬영에만 2년의 시간을 썼다. 수준 높은 고증 덕분에 게이머들은 당시 파리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망가졌을 땐 유비소프트가 복구 작업을 지원하고 50만유로(약 7억5300만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당시 이 게임사는 “우리가 게임에서 한 일은 과학적 재구성이 아니라 예술적 비전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밝히며 게임을 일주일 동안 무료로 공급하기도 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유비소프트는 개막식에 대한 게이머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개막식 중 아르노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진과 ‘웰컴 투 파리’라는 글귀를 SNS에 게재했다. 게임 영상과 함께 “파리의 옥상을 주시하세요, 아르노가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라는 게시글도 올렸다.
유비소프트가 27일 SNS '트위터'에 게재한 글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게임 화면을 담았다. 엑스 제공
유비소프트가 27일 SNS '트위터'에 게재한 글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게임 화면을 담았다. 엑스 제공
미국 매체 NBC는 “관객들이 성화 봉송 주자와 어쌔신 크리드 캐릭터의 유사성을 알아차렸다”며 “복면 쓴 사람의 의상은 오페라의 유령부터 아르센 뤼팽까지 프랑스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로게이머닷넷, 더게이머 등 해외 게임 매체들도 “아르노가 올림픽 개막식에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