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이 한국 정부를 대리했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CIA) 출신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해 충격파를 던진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뉴욕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통해 국가정보원의 아마추어 같은 정보 활동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요원들이 수미 테리에게 명품 매장에서 고가의 선물을 사주거나 함께 식사하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허술한 행태에 국민은 경악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만에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발 더 큰 ‘사고’가 공개됐다. 북한·해외 정보 수집과 첩보 업무를 맡은 정보사의 한 군무원 노트북을 통해 우리 첩보요원 신상 등 최대 수천 건의 기밀정보가 북한에 유출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본인 주장대로 해킹이든, 북한에 포섭된 이적행위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군당국은 해외 요원들에게 급거 귀국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대북 작전에서 국정원보다 더 핵심 역할을 하는 정보사 요원들의 신상 정보가 술술 샜다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정보사에서는 사령관에 대한 하극상으로 장군이 직무에서 배제되는 일도 이달 초 벌어졌다. 조직 내 갈등과 기강 해이가 국정원과 판박이다.

총알이 쏟아지는 실제 전장이든 산업 현장이든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고,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허술한 정보전 능력은 치명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은밀해야 할 정보기관에서 인사 갈등설이 튀어나오고 잊을 만하면 정보 유출 문제가 터져 나온다. 이런 정보기관을 믿고 안심해도 좋을지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다.

국가 정보 역량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권력이 정보기관을 입맛대로 이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지난 정부 때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망)가 사실상 붕괴한 것과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정보전 역량은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