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상위 1% 이내 성적을 얻은 우수 학생들이 모두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다는 소식이다. 자연계열 수능 상위 1.38%인 488명, 내신 1.06등급 이내인 125명 전부가 의·약대로 진로를 선택한 것이다. 컴퓨터 반도체 물리 등 여타 자연계 일반학과로 진학한 최상위 인재는 ‘0명’이라는 의미다.

수능 1등급(4% 이내)으로 범위를 확대해 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4명 중 3명(75.7%)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다는 게 종로학원 분석이다. 새삼스럽진 않지만 이번 결과는 의대 선호 현상이 ‘쏠림’을 넘어 병적인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능력과 적성이 백인백색인 인재들이 단 하나의 전공을 획일적으로 선택한 것은 한국 교육이 구조적으로 잘못 설계됐다는 분명한 방증일 것이다.

단순 입시를 넘어 나라 미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글로벌 반도체·인공지능(AI) 전쟁 와중에 점점 심해지는 ‘의대 블랙홀’ 현상은 ‘이공계 엑소더스’와 동전의 양면이다.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산업 육성에 명운을 걸고 있는 판에 한국만 역주행이다. 최근 5년간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 중도 이탈한 미래 과학도만 1006명이다. 대부분 의대 진학을 노린 결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니 경제 일선에선 AI·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미래 기술 인재를 뽑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친다.

‘묻지 마 의대행’은 높은 기대 수입과 연계돼 있다.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 석·박사도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려면 10년 이상 걸리지만 비슷한 연차의 의사 연봉은 평균 2억3070만원에 달한다. 전문연구요원 제도 등 이공계 병역특혜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참다못한 두뇌들이 ‘탈한국’을 선택하고, 그 빈자리를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유학생이 채우는 악순환이다.

조금 단순화하면 나라 미래는 과학 수준에 달렸다. 미국 중국 등이 유치원·초등 교육에서부터 AI 교육을 지원하는 이유다. 반면 한국은 잘못된 교육과 보상체계 탓에 ‘초등생 의대 진학준비반’까지 등장했다. 의료개혁과 함께 획기적인 이공계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