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싱크의 'Bye, Bye, Bye'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흘러나온다. 빨간 수트를 입은 존재(아마도 슈퍼 히어로로 추정되는)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며 (엔싱크를 능가하는 완벽한 안무에 주목!) 그를 잡으러 온 무리들을 향해 해골의 뼛조각을 날리기 시작한다. 적의 정수리, 엉덩이, 눈알 등을 관통하며 부유하는 뼛조각 위로 핏빛 오프닝 크레딧이 적힌다. 라이언 레이놀즈, 휴 잭맨, 숀 레비 (그리고 이하 참여자들).
사진출처. Marvel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사진출처. Marvel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아마도 140여년 동안의 영화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고어하면서도 코믹한 오프닝으로 남을 서막은 이번에 개봉한 마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숀 레비, 2024) 의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다. 데드풀 시리즈는 마블 유니버스(MCU)에서 최초로 R 등급을 받은 영화로 영화의 오프닝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폭력묘사와 수위 높은 욕, 그리고 성적 농담으로 가득한 ‘변종 슈퍼 히어로물’이다.

데드풀 시리즈의 시그니쳐 – 전라도 스타일의 하드코어 욕을 넘어서는 데드풀의 문학적인(?) 욕설과 쉬지 않는 농담 – 은 물론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점은 역시 <로건>에서 장렬히 전사했던 울버린의 귀환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메인 포스터 / 이미지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메인 포스터 / 이미지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야기는 ‘히어로 커리어’를 은퇴한 후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는 웨이드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친구, 카산드라와도 이별한 그는 외롭지만 그럼에도 그를 보살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평온한 인생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카산드라와 친구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하던 중, TVA (Time Variance Authorities, 시간관리국)의 요원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TVA의 관리인, 패러독스는 데드풀/웨이드 세계의 중심인물인 울버린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세계는 곧 소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이에 데드풀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곧 없어질 세계를 버리고 TVA의 약속을 따라 다른 세계에서 어벤져스와 활약할 것인지, 다른 세계로 넘어가 울버린을 구해서 친구들이 살고있는 지금 이 세계를 구해낼 것인지.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언제나 영화의 메인 아젠다는 ‘세상의 종말’ 그리고 구원이다. 다만, 이 종말이 어떻게 초래되었으며 (혹은 앞으로 초래될 것이며) 누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각 에피소드의 전제가 된다. 따라서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문명의 종말을 가져오는 복잡한 도식들, 예컨대 지구의 원자가…… 시간의 장력이…... 등등이 이해 불가하다면 안 되는 설정을 부여잡기보다 슈퍼 히어로가 이번엔 어떤 적에 맞서 어떻게 이겨 낼 것인지만 감상 포인트로 잡으면 된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은 특히 이런 면에서 비교적 이슈를 단순화 시키고 히어로의 활약을 배가한다. 이번 문명의 위기는 미친 과학자의 실험도 아니고, 절대악의 출현도 아니며 세계관을 조종할 수 있는 타임리퍼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입은 거칠지만) 착한 영웅, 데드풀은 본인의 숙원사업이었던 어벤져스에 합류를 포기하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울버린을 찾아 나선다. 둘은 힘을 합쳐 이 세계도 구하고, 타임리퍼의 악용도 막아낼 것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분명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부분이자 (적어도 상영관 내에서의 반응은 그랬다) 수려하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은 영화의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이다. 영화는 디즈니의 폭스 인수를 포함해서 쉴 새 없이 영화 밖 현실을 언급하며 허구의 벽을 허문다. 이는 일반적으로는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언급과 풍자가 코미디와 패러디의 주체가 된다.

특히 영화 속에서 쉴 새 없이 언급되는 다른 영화들, 예를 들어 <매드 맥스>의 배경과 인물을 그대로 따온 디스토피아, ‘보이드’는 영화의 또 다른 폭소 포인트가 된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의 문턱과 영화의 문법을 한없이 낮춘 천박하지만 사랑스럽고, 과하지만 영리한 슈퍼 히어로 영화다. 이 세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반/영웅으로 남을 두 인물 (각각 다른 이유로) – 데드풀과 울버린의 ‘영적인 로맨스’를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선물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Marvel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 사진출처. Marvel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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