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리더 / 글로벌 CEO - 톰 레이커트 ERM CEO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지속가능 대전환의 파고에 올라타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지속가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전환의 기회를 잡고 있다. 혁신을 주저하는 기업에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다.”

톰 레이커트 ERM CEO가 최근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기업에 전환의 파고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의 가장 가까이에서 변화를 목도하고 있어서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컨설팅 분야의 선두 주자인 ERM을 이끌며 세계 각지의 CEO와 소통하고 있다.

기업은 현재 ESG 경영과 관련해 거친 항해를 하고 있다. 정치 지형이 재편되고 있으며, 국경을 초월한 ESG 규제가 쏟아지고 있다. 에너지 시장도 요동치며 가격 급락이 반복되고 있다. 디지털전환과 인공지능(AI)도 기업의 ESG 경영에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그와 함께 기업들이 왜 지금 시점에서 변화의 파고에 올라타야 하는지 알아봤다.

-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가 ESG를 바라보는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나.

“2년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기업들은 야심 찬 목표를 내세웠으나 상세한 계획은 없었다. 이후 2년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기업은 이제 지속가능성 문제를 더 실질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매우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최근 2년 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기업을 둘러싼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2년 전만 해도 러·우전쟁이나 이스라엘 사태 같은 문제는 없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에너지 가격 급등이나 물가 상승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상업적 가치로 어떻게 전환할지 고민해야 한다.”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 ESG 정보 공시 의무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기업이 ESG 경영과 관련해 어떤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 공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최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지속가능성 공시를 표준화함으로써 보고서 작성의 복잡성이 줄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표준화를 통해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데이터 프라이버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규제로 접근하는 데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예를 들어, EU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등을 통해 유럽은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규제는 실제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은 이러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규제를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기업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이 규제를 통해 회사의 근본적 부분까지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 공시와 기후 외 다가올 파고는 무엇이 있나.

“지난 몇 년간 탄소가 의제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은 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이면 전 세계 여러 나라가 물 부족 국가가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같은 시설을 인허가할 때는 워터 포지티브(기업이 물 사용량보다 더 많은 물을 자연에 돌려보내는 개념)를 중요하게 본다. 또 다른 중요한 의제로는 인적자본이 있다. 인적자본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시설을 마련할 때 주민들이나 기타 이해관계자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인권 문제를 포함해 공급망을 다루는 것이다.”

- 2024년은 ‘선거의 해’로 불린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약진이 ESG 생태계에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평가하나.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60여 개의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러한 선거들이 ESG 경영과 관련한 의제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선거가 치러지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을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하지만, 개별 주 차원에서 결정하는 정책도 많다. 캘리포니아주 같은 경우 특정 규모 이상 기업이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를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 부분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 도입 시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주 차원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대통령선거 결과와는 무관할 것이다. 주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많기에 대통령선거의 의미가 크지 않다. 나아가 미국은 유럽과 달리 소비자와 기업의 역할이 크고, 이들이 주도해나가는 국가다. 미국 내 주요 대기업은 이미 지속가능성에 대해 명확한 의제를 설정해놓은 상태다. 이들이 미국에서만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운영 범주이기에 미국 대통령선거가 ESG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 그럼에도 한국의 기업인들은 특히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를 상당히 우려한다.

“물론 미국 대선만 놓고 보면 두 후보자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정책 접근 방식이 약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다양한 산업 분야와 기술 영역에서 보조금 혜택을 봤다. 이러한 부분은 누가 당선자가 되는지에 따라 성격이 조금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명확하게 어떻게 하겠다고 발표하거나 말한 부분은 없다.”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톰 레이커트 ERM 글로벌 CEO. 사진=서범세 기자
-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는 21.6%다.

“에너지 전환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청정에너지가 더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RM도 재생에너지 3배 확충 및 에너지 효율 2배 증가를 항상 강조해왔다. 탈탄소화를 위해 화석연료를 줄이는 데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자본투자와 에너지원 선택도 중요하지만, 금융기관, 정부, 개발사, 발전사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기업은 무역을 경제 기반으로 하는 만큼 다양한 통상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 속도를 가속화해야 한다. 기업들도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따라서 현재처럼 민간이 스스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처럼 재생에너지에 관한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삼성이나 다른 대기업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기업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기업에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한국 기업에 전할 말이 있다면.

“한국은 세계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한국에 본사를 둔 많은 회사가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의 여정은 매우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진행될 이 여정은 우리의 현실과 함께할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구축하는 단계이며, 변화 관리를 배우고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원을 어디에 쓰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많은 자산과 시간이 필요한 대전환의 단계다.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기업은 지속가능 대전환의 파고에 올라타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지속가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전환의 기회를 잡고 있다. 혁신을 주저하는 기업에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다.”

ESG 컨설팅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ERM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지속가능성 컨설팅 회사다. 1971년 설립된 영국의 ERL과 1977년 설립된 미국 ERM의 합병을 통해 탄생했다. 전 세계적으로 8000여 명의 ERM 컨설턴트가 글로벌 기업에 ESG 경영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만 70여 명의 컨설턴트가 활동하고 있다. 2023년에는 13억2300만 달러(약 1조8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