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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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소비시장에서 ‘케이(K)자’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자산가들이 ‘통 큰’ 소비에 나서며 백화점 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경제적 부담이 커진 서민은 필수재마저 더욱 깐깐하게 구입하고 있다. 자산가만 지갑을 열고 서민은 지갑을 움켜쥐면서 드러그스토어·슈퍼마켓은 쪼그라든 매출과 주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오는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따른 금리 인하에도 세계 소비시장에서 한 선은 위로, 다른 선은 아래로 뻗는 ‘K자’형 양극화 현상이 완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부자만 돈 쓴다…美·中·日 소비재 시장 양극화

희비 엇갈린 日 백화점·드러그스토어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소매 업체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자국 자산가와 해외 관광객 소비로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백화점 업체들이 주식시장에서 주목받는다. 지난 5월 일본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3.7% 증가했다. 화장품, 식료품 등을 파는 드러그스토어와 슈퍼마켓은 같은 기간 매출이 각각 6.8%,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 다카시마야, 다이마루마쓰자카야 백화점 등을 운영하는 J프런트리테일링 등 소매 업체 시가총액 상위 3곳은 최근 1년 주가가 평균 55% 급등했다. 같은 기간 도쿄증권거래소 토픽스지수가 18%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블룸버그는 “엔화 가치 약세 덕분에 해외 관광객이 늘어난 데다 자국 고액 자산가의 소비가 급증한 것이 외형 성장세를 보인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시마야 백화점 관계자는 “증시 랠리가 보석과 미술품 등 고가 제품 판매에 활력이 되고 있다”며 “초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백화점의 ‘퍼스널쇼퍼’에게 소비자들이 지출하는 평균 금액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드러그스토어 체인을 운영하는 마쓰모토기요시는 1년 새 주가가 12% 이상 급락했다. 올 들어서만 11.62% 하락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드러그스토어 업체 코스모스 역시 최근 6개월간 주가가 16.81% 떨어졌다. 슈퍼엔저 장기화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주머니가 얇아진 서민이 필수품조차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해석했다.

美에선 ‘5달러 세트’ 인기몰이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미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 회복을 지탱해온 소비 심리가 위축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발표된 미국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지만 2분기 기업들 실적이 불안정한 모습”이라며 “소비 위축론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시간대가 공개한 7월 소비자심리지수 확정치는 66.4로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다. 미시간대는 이와 관련해 “고물가가 저소득층의 소비 심리를 계속 끌어내린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할인 경쟁에 나서고 있다. CNBC에 따르면 타코벨, 웬디스, 버거킹, 맥도날드 등이 5달러 세트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CNBC는 “올 들어 S&P500지수 상승률이 14% 정도인데, 프랜차이즈 업체 주가는 대개 두 자릿수 하락세를 띠고 있다”며 “덜 부유한 서민층을 겨냥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도 얼어붙은 서민의 소비 심리를 되살리기 위해 3000억위안을 ‘이구환신’(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정책에 투입하기로 했다. TV,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 8종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판매가격의 15~20%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하반기 소비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소비시장 트렌드와 관련해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은 “자산가는 인플레이션을 상쇄하기 위해 실물자산을 보유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며 “저소득층은 오히려 구매 태도가 신중해져 소비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