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법의 신뢰와 권위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는 외부의 힘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뜨리기도 하고, 쌓아 올리기도 한다. 미국 사법부의 신뢰는 200여 년 동안 용기 있고 헌법정신에 투철한 수많은 법관이 험난한 고난의 행군으로 쌓은 결과다.

사법의 본령은 다수자와 소수자를 차별 없이 보호하고, 지나친 행정 권력과 수사 권력을 적법절차로 통제해 조화로운 상생의 나라, 개인의 기본권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있다. 다수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행정 및 입법과는 다른, 사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법원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내부 구성원만을 위한 제도 변경에는 신중해야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정착한 제도에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으며, 이를 바꿀 때는 숙고가 필요하다.

법관은 국민의 법감정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재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재판의 기준과 토대는 헌법, 법률, 확립된 선례, 그리고 치우침 없는 공평한 정의감에 있어야 한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이라고 불리는 국민 법감정은 불확정 개념이다. 그 국민이 전체인지 다수인지 소수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진영·이념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국민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국민 법감정은 헌법과 법률로 명문화된다. 입법을 거치기 전의 국민 법감정은 추상적인 개념이며, 각자의 편에 맞는 일부의 생각일 수 있다.

법관은 항상 딸깍발이 정신과 대도무문의 마음으로 정도를 걷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이렇게 모든 재판에 임한다면 내·외부의 비난, 음해, 협박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각 사건에 임할 때 ‘일개 판사’가 아니라 ‘일국의 판사’로서 판결해야 한다. 하늘과 땅과 스스로에 비추어 보아 부끄러움이 없고 ‘헌법’ ‘법률’ ‘직업적 양심’ ‘공평한 정의감’에 맞게 결정한다면, 헌법상 신분보장이 되는 법관이 무엇이 두렵고 거리낄 것인가.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는 외부의 힘만으로는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사법부 구성원들이 법과 정의감을 토대로 공정하게 판결할 때 신뢰와 권위가 굳건히 세워진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법의 본령을 잊지 않는다면 사법부는 저절로 국민의 신뢰와 존경받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사법부의 미래는 내부 구성원의 노력과 헌신에 달려 있다. 법관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법부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법치주의와 기본권 보장이 실현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법부 1년 예산이 국가 예산 전체의 0.3%에 불과한 현실에서 ‘고용주’인 국민도 그들의 사기 진작 등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