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에 등장한 읽은 책들… 무슨 내용 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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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독립·예술영화 1위
주인공 히라야마가 읽은 책 관심 모아
60여년 전 번역본에 절판된 책까지 찾아 읽어
주인공 히라야마가 읽은 책 관심 모아
60여년 전 번역본에 절판된 책까지 찾아 읽어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배우 야쿠쇼 코지 분)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책이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잠들기 전 머리맡에 놓인 작은 등을 켜고 꼭 책을 읽는다. 주말마다 들르는 헌책방에서 신중히 골라 온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눈이 침침해질 때 쯤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에 읽은 페이지를 표시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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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개봉한 이 영화가 국내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화제가 되면서 영화에 나온 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가 읽은 책은 총 세 권.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고다 아야의 <나무> 등이다. 60여 년 전 번역본만 남아 있거나 절판되고, 심지어 국내 번역본이 없는 경우에도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이 많다.
복간과 영화 개봉 맞물려 '특수'
윌리엄 포크너(1897~1962)의 <야생 종려나무>는 영화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책. 나뭇잎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장면은 히라야마의 머릿속에 각인돼 꿈에서도 나타난다.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크너는 20세기 미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하나다. <야생 종려나무>는 '야생 종려나무'와 '늙은이'란 두 중편 소설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독특한 기법을 취하고 있다. '야생 종려나무'엔 종려나무가 가득한 미시시피주의 한 바닷가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늙은이'는 대홍수로 미시시피 강에 빠진 여인을 구한 뒤 돌아오란 명령을 받은 죄수의 이야기다. 전통적인 결혼 제도에 맞서 사랑과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인물과, 감옥 안에 갇혀 주체성을 상실한 인물의 이야기는 무관해보이면서도 서로의 서사를 보완하고 완성한다. 이 책은 영화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장-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 패트리샤는 포크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슬픔과 무(無) 중에서 나는 슬픔을 택할 것이다"는 소설 속 대사를 인용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책의 배경과 소재를 차용해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만들었다.
책은 국내엔 <야생의 정열>이란 제목으로 1958년 번역됐다. 절판됐다가 이달 초 영인본(원본을 스캔해서 제본한 책)이 복간됐다. '퍼펙트 데이즈' 개봉 시기와 우연히 맞물려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출판사 지식공작소 관계자는 "그동안 포크너 마니아들이 포크너 책 중 이 책만 출간이 안 돼있어 다시 출간해달라는 목소리가 많아 출간을 준비했는데, 영화에도 책이 등장하면서 판매가 늘었다"며 "60여 년 전에 번역됐다 보니 세로쓰기에 한자 병기로 읽기 어려운 상태라 다시 번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단 걸 알았어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11>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는 히라야마에게 책방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이스미스는 섬세한 심리 묘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표 범죄 소설가다. 2008년 '타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이스미스도 영화와 인연이 깊은 작가다. 그의 데뷔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흥행했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만들어진 <리플리 시리즈>도 유명하다.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던 톰 리플리가 비슷한 또래의 상류층 청년을 살해한 뒤 그의 신분을 훔치는 내용이다. 1999년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리플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도 하이스미스의 작품.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의 가출한 조카도 <11>을 읽는다. 소설 속에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며 집 안에 갇혀 살던 주인공 소년은 어머니가 사 온 식용 자라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어머니가 자라를 먹기 위해 그것을 끓이는 모습을 본 소년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조카는 히라야마에게 자신이 집에 돌아가면 주인공 소년처럼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일본이 사랑하는 작가, 고다 아야
히라야마가 단골 술집에 들고 간 책은 일본의 수필가이자 소설가 고다 아야(1904~1990)의 수필집 <나무>. 책방 주인은 이 책을 집어 든 히라야마에게 "같은 단어라도 이 작가가 사용하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고 말했다. 단골 술집 주인은 책을 들고 온 히라야마를 보고 "지적이다"고 말하고, 히라야마는 수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고다 아야는 일본 근대 문학에 크게 기여한 소설가 고다 로한의 둘째 딸이다. 여성의 삶과 가족 등에 관한 일상적 소재를 따뜻하면서도 박력 있게 묘사해 일본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다. <나무>는 작가가 말년에 십 년 넘게 일본 열도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체험하고 교감한 내용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나무에 얽힌 열 다섯 편의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식물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나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히라야마와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선 절판된 상태다. 다만 일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곳이 있다. 온라인 상점에 남겨진 최근 리뷰의 대다수가 "영화에서 보고 읽고 싶어 구매했다"는 글들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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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과 영화 개봉 맞물려 '특수'
윌리엄 포크너(1897~1962)의 <야생 종려나무>는 영화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책. 나뭇잎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장면은 히라야마의 머릿속에 각인돼 꿈에서도 나타난다.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크너는 20세기 미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하나다. <야생 종려나무>는 '야생 종려나무'와 '늙은이'란 두 중편 소설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독특한 기법을 취하고 있다. '야생 종려나무'엔 종려나무가 가득한 미시시피주의 한 바닷가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늙은이'는 대홍수로 미시시피 강에 빠진 여인을 구한 뒤 돌아오란 명령을 받은 죄수의 이야기다. 전통적인 결혼 제도에 맞서 사랑과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인물과, 감옥 안에 갇혀 주체성을 상실한 인물의 이야기는 무관해보이면서도 서로의 서사를 보완하고 완성한다. 이 책은 영화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장-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 패트리샤는 포크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슬픔과 무(無) 중에서 나는 슬픔을 택할 것이다"는 소설 속 대사를 인용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책의 배경과 소재를 차용해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만들었다.
책은 국내엔 <야생의 정열>이란 제목으로 1958년 번역됐다. 절판됐다가 이달 초 영인본(원본을 스캔해서 제본한 책)이 복간됐다. '퍼펙트 데이즈' 개봉 시기와 우연히 맞물려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출판사 지식공작소 관계자는 "그동안 포크너 마니아들이 포크너 책 중 이 책만 출간이 안 돼있어 다시 출간해달라는 목소리가 많아 출간을 준비했는데, 영화에도 책이 등장하면서 판매가 늘었다"며 "60여 년 전에 번역됐다 보니 세로쓰기에 한자 병기로 읽기 어려운 상태라 다시 번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단 걸 알았어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11>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는 히라야마에게 책방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이스미스는 섬세한 심리 묘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표 범죄 소설가다. 2008년 '타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이스미스도 영화와 인연이 깊은 작가다. 그의 데뷔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흥행했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만들어진 <리플리 시리즈>도 유명하다.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던 톰 리플리가 비슷한 또래의 상류층 청년을 살해한 뒤 그의 신분을 훔치는 내용이다. 1999년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리플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도 하이스미스의 작품.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의 가출한 조카도 <11>을 읽는다. 소설 속에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며 집 안에 갇혀 살던 주인공 소년은 어머니가 사 온 식용 자라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어머니가 자라를 먹기 위해 그것을 끓이는 모습을 본 소년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조카는 히라야마에게 자신이 집에 돌아가면 주인공 소년처럼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일본이 사랑하는 작가, 고다 아야
히라야마가 단골 술집에 들고 간 책은 일본의 수필가이자 소설가 고다 아야(1904~1990)의 수필집 <나무>. 책방 주인은 이 책을 집어 든 히라야마에게 "같은 단어라도 이 작가가 사용하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고 말했다. 단골 술집 주인은 책을 들고 온 히라야마를 보고 "지적이다"고 말하고, 히라야마는 수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고다 아야는 일본 근대 문학에 크게 기여한 소설가 고다 로한의 둘째 딸이다. 여성의 삶과 가족 등에 관한 일상적 소재를 따뜻하면서도 박력 있게 묘사해 일본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다. <나무>는 작가가 말년에 십 년 넘게 일본 열도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체험하고 교감한 내용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나무에 얽힌 열 다섯 편의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식물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나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히라야마와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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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