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의 부채춤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집 앞의 자귀나무를 처음 인지한 건 아이들이 여전히 유모차를 타던 시기였습니다. 언덕에서 언덕으로 (쌍둥이가 아니지만) 쌍둥이 유모차에 태워 이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허리를 한 번씩 펴고 하늘을 봐야만 했는데, 그해 봄부터 본 꽃이 산수유꽃과 겹벚꽃, 자귀나무꽃, 마로니에나무꽃입니다.

자귀나무꽃은 분홍색 부채를 닮았습니다. 그냥 분홍색이 아니라 딱 1988년에 개최된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의 부채춤에 나오는 그 색상을 닮았습니다.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자귀나무는 제게 ‘올림픽’을 떠오르게 합니다. 자귀나무꽃의 중심부는 희고 끝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도는데 그 색상과 배치가 영락없는 ‘88서울올림픽의 부채’ 같습니다. 낮에 펼쳤다가 밤이면 오므리는 자귀나무의 잎사귀도 한국의 전통적인 접부채(접이식 부채)의 특성을 닮았으니 이런 인연이 또 없습니다. 해마다 초여름이 되면, 자귀나무꽃이 핀 집 앞이나 나름대로 군락지인 청계천변을 지날 때면 88서울올림픽의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가 떠올라 흥얼거리곤 합니다.
청계천의 자귀나무와 꽃 / 사진. ⓒ김현호
청계천의 자귀나무와 꽃 / 사진. ⓒ김현호
서양칠엽수라고도 부르는 마로니에나무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고종 황제 때 네덜란드 공사가 선물하며 한국에 처음 심어졌습니다. 나무 전문가이자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박상진 선생이 쓴 <궁궐의 우리나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궁궐 가까이 위치한 혜화동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지금은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이 아니더라도 동네 어귀 작은 공원마다 이 나무가 많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아름드리 마로니에나무가 많습니다. 특유의 큰 잎사귀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도 고마운데, 개성 있게 피어나는 마로니에나무의 꽃은 마치 높게 쌓아 올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보입니다. 특히 커다란 나뭇잎이 접시처럼 받들고 있으니 꽃은 더욱 근사하게 빛납니다.
남산의 마로니에나무와 꽃 / 사진. ⓒ김현호
남산의 마로니에나무와 꽃 / 사진. ⓒ김현호
티베트에서는 어떤 춤을 출까요?

사카모토 류이치의 주옥같은 음악 가운데에는 비장한 것뿐만 아니라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흥에 겨운 곡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티베탄 댄스(Tibetan dance)’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티베트의 전통춤은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기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정확히 어떤 곳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티베트에서는 마치 우리의 강강술래처럼 공동체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풍요와 건강을 기원했는데, 그 바로 옆에서 ‘티베탄 댄스’를 연주해도 참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매에는 한삼처럼 하늘하늘한 천을 끼우고 팔과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회전을 하는 이 춤은 주술적인 의미도 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 척박한 고원(高原)에 살았던 그 옛날 티베트 사람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을 들을 수 있었다면 특유의 흥겨움에 기뻐했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티베탄 댄스' 듣기]


원래는 전자음악으로 작곡된 YMO(옐로 뮤직 오케스트라) 시절 사카모토 류이치의 ‘통푸(Tongpoo, 동풍東風이라는 뜻)’는 그의 음반 <BTTB(Back To The Basic,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라>에서 더욱 흥겹게 편곡됐습니다.

두 사람이 연주해야 하는 연탄곡(連彈曲)으로 변신한 이 곡은, 듣고 있으면 스텝지대(Steppe, 반半사막지대라고도 부르며, 짧은 풀이 자라는 평야 지대를 말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아시아, 북아메리카의 대평원, 아프리카 사헬 등을 스텝지대로 분류합니다)의 바람을 가르는 유목민족이 떠오릅니다. 비교적 최근에 책 <노마드Nomad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를 읽었는데, ‘통푸’가 계속 떠올랐던 걸 보면 참으로 그럴싸한 연상입니다.
분홍빛 자귀나무 꽃을 보고 올림픽을 떠올린 까닭
아마도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도 이 음악을 듣는 이마다 다양하게 연상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의류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인 준야 와타나베와 협업을 통해 ‘통푸’를 좀 더 미래지향적인 곡으로 편곡했는데, 이번에는 스텝지대의 느낌 대신 패션의 도시 한복판을 거니는 기분이 듭니다.

[준야 와타나베 2022 봄/여름 패션 쇼, 류이치 사카모토가 '통푸'로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철새가 날면 들리는 주전자 물 끓는 소리

지금 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강원도 철원의 평야 지대와 경기도 북부 연천, 포천 등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기억나는 일화는 신체능력의 극한을 경험했던 행군이나 훈련이 아닙니다. 극심한 추위나 숨 쉴 수 없을 것처럼 견디기 힘든 더위 같은 게 아닙니다. 바로 새입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두루미와 기러기를 비롯해 각종 철새가 들녘과 하늘을 가득 채우기 일쑤였는데 노을빛과 뒤섞인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심상은 철새들이 무리 지어 이동할 때 들렸던 소리입니다. ‘끼룩끼룩’이라는 의성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참 다양한 음성이 섞여 있었는데, 마치 ‘석유난로 위에 얹은 양은 주전자 물이 끓는 소리’ 같았습니다.
철원평야의 기러기 / 사진. ⓒ김현호
철원평야의 기러기 / 사진. ⓒ김현호
강원도를 떠난 지 20년 이상이 흐른 몇 해 전 겨울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재두루미의 우아한 몸짓과 쇠기러기 떼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흥에 젖었는데, 그 주전자 물 끓는 소리가 여전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뭉클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철원평야의 기러기 / 사진. ⓒ김현호
철원평야의 기러기 / 사진. ⓒ김현호
지하차도를 지날 때 만나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주말이면 자주 지나는 두 장소에는 지하차도가 있습니다. 지하차도의 특성상 낮에도 어둠이 유지되고 그 짧은 구간을 통과하려 해도 차량들은 전조등을 밝게 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하차도의 구조상 양방향 차량을 구분하는 가운데에는 이 거대한 토목 구조물을 지탱해 주는 굵은 기둥들이 설치되기 마련입니다. 배흘림기둥이나 석조전의 기둥처럼 근사하지는 않지만, 지하차도의 콘크리트 기둥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기둥과 기둥의 좁은 틈으로 끊임없이 차량 전조등의 빛을 조금씩 통과시킨다는 것이죠.

그런데 차량은 멈춰 있지 않으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차량 하나가 이동하는 장면을 가만히 보면 콘크리트 기둥을 통과할 때마다 잠시 불을 깜빡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빛이 연속적이지 않고 점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차량의 전조등이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점멸하며 다가올 때, 그 모습은 명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진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보입니다.
분홍빛 자귀나무 꽃을 보고 올림픽을 떠올린 까닭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박찬욱, 봉준호 감독 같은 거장들이 영화를 만들 때 지하차도의 차량 불빛이 카메라 플래시로 전환되는 장면을 넣어도 참 좋겠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여기에 필립 글래스 특유의 심란한 음악을 배경으로 곁들인다면 잊지 못할 장면이 완성될 것도 같습니다.

일상의 연상

보통 어른이 되면 상상력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상상은 비용도 들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으니 여전히 쉬지 않고 즐기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하고 연상하는 즐거움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일상이 지금보다는 단조롭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상만으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유를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도 괜찮을 듯합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