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노래, 힘이 되는 영화, 힘이 되는 벗…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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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사랑하는 당신, 이게 삶의 힘이야
'삶의 힘'이 되는 것들
사랑하는 당신, 이게 삶의 힘이야
'삶의 힘'이 되는 것들
삶의 힘
매일 저녁 6시, 퇴근을 준비하며 듣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도입부의 배경음악과 진행자의 따뜻한 음성을 들을 때면 가끔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합니다. 그 위로가 ‘삶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던 한 이탈리아 음악도 제게 힘을 보탰습니다. 무려 제목이 ‘삶의 힘(La forza della vita)’인 노래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파올로 발레시(Paolo Vallesi)가 만들고 불렀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부분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참았던 눈물이 흐를 것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이었습니다. 노랫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이후에는 더욱 가까이 두고 자주 듣게 됐는데요. 대략적인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에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살아가라고 격려하는 음악이 다 있군’이라고 생각했죠. 참 고마웠습니다. ‘삶의 힘’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하마구치 유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 등장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인해 참 상처가 깊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들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호흡을 맞춰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 받게 됩니다.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인물 한 명 한 명의 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슬픔을 간직한 인물과 합을 맞춰 보는 또 다른 인물이 수어를 사용해 말하는 까닭에 위로의 문장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때마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까닭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울컥한 마음이 생기곤 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인물의 수어가 마치 제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몸이 떨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아프지 말고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커졌습니다. 때때로 영화 속 한 장면이 제게 ‘삶의 힘’입니다.
피아노가 바로 삶의 힘
바흐 연주의 대가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인물입니다. 주 샤오메이는 이 모든 자전적 경험을 <마오와 나의 피아노: 모택동에서 바흐로>라는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나타내며 베이징중앙음악학원에서 수학했던 주 샤오메이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재교육 수용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물론 가족들과 모두 생이별해야만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고된 노역을 이어가던 상황 속에서 주 샤오메이는 피아노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냅니다.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곡, 그중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게 된 주 샤오메이는 “음악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주 샤오메이에게 피아노, 바흐, 골드베르크는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바로 ‘삶의 힘’입니다.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이 맺어준 삶의 힘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였던 데이비드 흄의 사상을 정리한 책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비극에 대하여 외>를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에 대하여’에 소개된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흄은 ‘능력 있는 감관(competent sense, 감각 작용과 지각 작용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이라는 용어를 통해 미세한 차이와 느린 변화를 구분해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이나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잘 소화해낸 사람은 소수의 엄선된 벗들과 동행할 때가 아니면 즐거움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서술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제게 흄의 이 책을 건넨 친구야말로 섬세한 감관을 지니고 소수의 사람과 깊게 교류하는 벗입니다. 언젠가부터 그런 벗들이 ‘삶의 힘’입니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성장하는 내내 ‘나에게는 왜 취향이 잘 맞는 주변인이 많지 않을까?’하고 걱정해 휩싸여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 집단과 잘 어울려야 하니 함께 운동하거나 삼삼오오 독서실에 다니며 친분을 다지려 고군분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들 공부하느라 그랬는지) 가슴이 떨릴 정도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벗은 참 드물었습니다. 그때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통하는 소수의 친구만이 당시의 제 마음을 헤아려줬던 듯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학교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는 벗들을 두루 사귀었습니다.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을 갖춘 벗, 남다른 감관을 갖춘 친구들을 말이죠. 끊임없이 서로가 읽은 책과 시청한 영화에 관해 토론하고 추천하기를 즐기는 벗들이 있습니다.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감관을 갖추었지만 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삶의 힘’을 공유하는 친구들이죠.
오늘따라, 제 ‘삶의 힘’의 원천인 가족과 그 벗들이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파올로 발레시의 노래 ‘삶의 힘’을 권하고 싶습니다.
[파올로 발레시의 '삶의 힘' 듣기]
김현호 칼럼니스트
매일 저녁 6시, 퇴근을 준비하며 듣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도입부의 배경음악과 진행자의 따뜻한 음성을 들을 때면 가끔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합니다. 그 위로가 ‘삶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던 한 이탈리아 음악도 제게 힘을 보탰습니다. 무려 제목이 ‘삶의 힘(La forza della vita)’인 노래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파올로 발레시(Paolo Vallesi)가 만들고 불렀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부분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참았던 눈물이 흐를 것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이었습니다. 노랫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이후에는 더욱 가까이 두고 자주 듣게 됐는데요. 대략적인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E il mondo è irraggiungibile
E anche quando la Speranza
Oramai non basterà
C'è una volontà
Che questa morte sfida
È la nostra dignità
La forza della vita
세상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게 되어도, 아무런 희망 없이 혼자 버티게 되어도
이 죽음 같은 상태를 이겨낼 의지가 있어
삶의 힘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야
(중략)
C'è una forza che ti guarda
E che riconoscerai
È la forza più testarda che c'è in noi
Che sogna e non si arrende mai
E' la volontà
Più fragile e inFinite
La nostra dignità
(Amore mio è)
La forza della vita
너를 지켜보는 하나의 힘이 있어
너의 안에서 굳건히 버티는 힘이 있다고
포기할 줄 모르는 꿈·의지·자존감, 연약하지만 무한히 뻗어나가는 힘
삶의 힘, 사랑하는 당신, 이게 삶의 힘이야
(하략)
- <삶의 힘(La forza della vita)> 중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에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살아가라고 격려하는 음악이 다 있군’이라고 생각했죠. 참 고마웠습니다. ‘삶의 힘’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하마구치 유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 등장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인해 참 상처가 깊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들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호흡을 맞춰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 받게 됩니다.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인물 한 명 한 명의 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슬픔을 간직한 인물과 합을 맞춰 보는 또 다른 인물이 수어를 사용해 말하는 까닭에 위로의 문장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때마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까닭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울컥한 마음이 생기곤 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인물의 수어가 마치 제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몸이 떨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아프지 말고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커졌습니다. 때때로 영화 속 한 장면이 제게 ‘삶의 힘’입니다.
피아노가 바로 삶의 힘
바흐 연주의 대가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인물입니다. 주 샤오메이는 이 모든 자전적 경험을 <마오와 나의 피아노: 모택동에서 바흐로>라는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나타내며 베이징중앙음악학원에서 수학했던 주 샤오메이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재교육 수용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물론 가족들과 모두 생이별해야만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고된 노역을 이어가던 상황 속에서 주 샤오메이는 피아노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냅니다.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곡, 그중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게 된 주 샤오메이는 “음악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주 샤오메이에게 피아노, 바흐, 골드베르크는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바로 ‘삶의 힘’입니다.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이 맺어준 삶의 힘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였던 데이비드 흄의 사상을 정리한 책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비극에 대하여 외>를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에 대하여’에 소개된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흄은 ‘능력 있는 감관(competent sense, 감각 작용과 지각 작용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이라는 용어를 통해 미세한 차이와 느린 변화를 구분해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이나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잘 소화해낸 사람은 소수의 엄선된 벗들과 동행할 때가 아니면 즐거움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서술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제게 흄의 이 책을 건넨 친구야말로 섬세한 감관을 지니고 소수의 사람과 깊게 교류하는 벗입니다. 언젠가부터 그런 벗들이 ‘삶의 힘’입니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성장하는 내내 ‘나에게는 왜 취향이 잘 맞는 주변인이 많지 않을까?’하고 걱정해 휩싸여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 집단과 잘 어울려야 하니 함께 운동하거나 삼삼오오 독서실에 다니며 친분을 다지려 고군분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들 공부하느라 그랬는지) 가슴이 떨릴 정도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벗은 참 드물었습니다. 그때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통하는 소수의 친구만이 당시의 제 마음을 헤아려줬던 듯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학교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는 벗들을 두루 사귀었습니다. 섬세한 취미와 섬세한 정념을 갖춘 벗, 남다른 감관을 갖춘 친구들을 말이죠. 끊임없이 서로가 읽은 책과 시청한 영화에 관해 토론하고 추천하기를 즐기는 벗들이 있습니다.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감관을 갖추었지만 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삶의 힘’을 공유하는 친구들이죠.
오늘따라, 제 ‘삶의 힘’의 원천인 가족과 그 벗들이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파올로 발레시의 노래 ‘삶의 힘’을 권하고 싶습니다.
[파올로 발레시의 '삶의 힘' 듣기]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