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연쩍은 경험도 다 쓸모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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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겸연쩍은 경험의 축척이 만들어낸 지혜
겸연쩍은 경험의 축척이 만들어낸 지혜
겸연쩍음의 효용
도시학자인 리차드 세넷의 수많은 명저 가운데 <무질서의 효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좀 더 자주 사용하는 어휘로 풀어낸다면 ‘무질서함도 쓸모가 있다’ 정도가 되겠죠.
전 어릴 때부터 쑥스럽고 어색한 상황에 처해 ‘겸연(慊然)쩍은’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제 삶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유난히 그런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향 탓이었겠죠. 그런데 청년을 지나 아저씨가 되어 가면서부터 그런 겸연쩍음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각하게 됐습니다. 단지 별일 없다는 듯이 넘길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욱 의연하게 받아넘기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아 겸연쩍었던 경험도 다 쓸모가 있구나’
까마귀와 독수리
아이들과 산책 중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저건 틀림없이 독수리다. 상승기류를 활용해 하늘을 오르고 공중을 휘휘 도는데 날갯짓도 하지 않는단다. 최대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지. 시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먹이를 발견하면 직선으로 하강할 거야” 여기에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매봉산과 응봉산, 두 곳 모두 먼 옛날에는 매사냥을 했던 곳이란다. ‘매봉’의 ‘매’와 ‘응봉(鷹峰)’의 ‘응(鷹)’이 모두 맹금류를 뜻하니까 참 재미있지 않니? 저기 보이는 서울숲은 조선시대에는 왕들의 사냥터이자 말을 기르던 곳이라 지금도 사슴 방목장이 있어. 이곳이야말로 매와 말이 어우러진 장소였단다. 신기하지? 아, 저기 독수리가 내려온다. 가보자”
실컷 아는 척을 한 후 가까이에 있던 나무로 쏜살같이 날아든 독수리를 보기 위해 아이들과 내달렸습니다. 독수리가 유유히 날개를 접더니 소리 냅니다.
"까악 까악" “아, 독수리가 아니라 까마귀였구나. 크게 오해했네” 아이들 앞에서 겸연쩍은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웠지만, 그 뒤로는 멀리서도 맹금류와 까마귀는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경험도 있습니다. “이 붉은 벽돌과 계단을 마감한 방식만 봐도 분명히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에요. 근사하죠? 김수근과 김중업 선생은 근현대 건축의 양대 산맥이었어요.” 궁금해하는 가족들을 향해 막힘없이 설명했습니다. 옛 공간 사옥,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교회, 혜화동의 아르코 예술극장 등 김수근 선생의 건축적 특징을 자주 접했고 책으로 읽어 깊게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건물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제 답이 틀렸다는 걸 인지했습니다. 한 건물은 김수근의 제자인 김석철 건축가의 작품이었고, 나머지 것은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이타미 준(유동룡) 건축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오해했네요”
틀린 답 이후에도 능청스럽게 나머지 설명을 이어갔지만, 겸연쩍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흑조와 백조
수 세기 전 유럽인들이 고니(백조, 학명 Cygnus atratus)의 색깔에 대해 품었던 믿음도 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니가 흰색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인들에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발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탐험가가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서 흑고니(흑조)를 발견하는 순간 ‘모든 고니는 백조’라는 신화는 더 유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경우를 가리켜 ‘블랙스완(Black swan, 흑조의 영어 표기)’으로 칭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크게 오해했네요’. 당대 생물학자들에게는 겸연쩍음을 넘어서는 혼돈이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때로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여겼는데 어쩌면 하나도 알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알고 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흑조의 사례와는 달리 현대인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오류를 인정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종종 스스로의 맹신에 대해 반성하며,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인정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겸연쩍을 겨를도 없습니다. 겸연쩍음과 화해, 용서
<인사이드아웃1·2>의 라일리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사춘기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시기에는 무안함·겸연쩍음·쑥스러움 같은 단어 몇 개를 동원해야 겨우 담을 수 있는 감정이 참 많았는데요.
겸연쩍고 부끄러운 순간과 경험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을 간직한 젊은 날을 용서하고 스스로와 화해하기 위해 저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모든 시간이 축적된 결과가 오늘날의 제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겸연쩍음조차 다독여주고 싶어집니다. 겸연쩍음의 효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내일 아침에도 무엇인가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며 쑥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겸연쩍은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며 어느새 조금은 지혜로워질 터이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계속하겠습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
도시학자인 리차드 세넷의 수많은 명저 가운데 <무질서의 효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좀 더 자주 사용하는 어휘로 풀어낸다면 ‘무질서함도 쓸모가 있다’ 정도가 되겠죠.
전 어릴 때부터 쑥스럽고 어색한 상황에 처해 ‘겸연(慊然)쩍은’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제 삶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유난히 그런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향 탓이었겠죠. 그런데 청년을 지나 아저씨가 되어 가면서부터 그런 겸연쩍음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각하게 됐습니다. 단지 별일 없다는 듯이 넘길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욱 의연하게 받아넘기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아 겸연쩍었던 경험도 다 쓸모가 있구나’
까마귀와 독수리
아이들과 산책 중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저건 틀림없이 독수리다. 상승기류를 활용해 하늘을 오르고 공중을 휘휘 도는데 날갯짓도 하지 않는단다. 최대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지. 시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먹이를 발견하면 직선으로 하강할 거야” 여기에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매봉산과 응봉산, 두 곳 모두 먼 옛날에는 매사냥을 했던 곳이란다. ‘매봉’의 ‘매’와 ‘응봉(鷹峰)’의 ‘응(鷹)’이 모두 맹금류를 뜻하니까 참 재미있지 않니? 저기 보이는 서울숲은 조선시대에는 왕들의 사냥터이자 말을 기르던 곳이라 지금도 사슴 방목장이 있어. 이곳이야말로 매와 말이 어우러진 장소였단다. 신기하지? 아, 저기 독수리가 내려온다. 가보자”
실컷 아는 척을 한 후 가까이에 있던 나무로 쏜살같이 날아든 독수리를 보기 위해 아이들과 내달렸습니다. 독수리가 유유히 날개를 접더니 소리 냅니다.
"까악 까악" “아, 독수리가 아니라 까마귀였구나. 크게 오해했네” 아이들 앞에서 겸연쩍은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웠지만, 그 뒤로는 멀리서도 맹금류와 까마귀는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경험도 있습니다. “이 붉은 벽돌과 계단을 마감한 방식만 봐도 분명히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에요. 근사하죠? 김수근과 김중업 선생은 근현대 건축의 양대 산맥이었어요.” 궁금해하는 가족들을 향해 막힘없이 설명했습니다. 옛 공간 사옥,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교회, 혜화동의 아르코 예술극장 등 김수근 선생의 건축적 특징을 자주 접했고 책으로 읽어 깊게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건물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제 답이 틀렸다는 걸 인지했습니다. 한 건물은 김수근의 제자인 김석철 건축가의 작품이었고, 나머지 것은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이타미 준(유동룡) 건축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오해했네요”
틀린 답 이후에도 능청스럽게 나머지 설명을 이어갔지만, 겸연쩍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흑조와 백조
수 세기 전 유럽인들이 고니(백조, 학명 Cygnus atratus)의 색깔에 대해 품었던 믿음도 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니가 흰색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인들에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발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탐험가가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서 흑고니(흑조)를 발견하는 순간 ‘모든 고니는 백조’라는 신화는 더 유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경우를 가리켜 ‘블랙스완(Black swan, 흑조의 영어 표기)’으로 칭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크게 오해했네요’. 당대 생물학자들에게는 겸연쩍음을 넘어서는 혼돈이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때로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여겼는데 어쩌면 하나도 알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알고 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흑조의 사례와는 달리 현대인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오류를 인정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종종 스스로의 맹신에 대해 반성하며,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인정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겸연쩍을 겨를도 없습니다. 겸연쩍음과 화해, 용서
<인사이드아웃1·2>의 라일리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사춘기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시기에는 무안함·겸연쩍음·쑥스러움 같은 단어 몇 개를 동원해야 겨우 담을 수 있는 감정이 참 많았는데요.
겸연쩍고 부끄러운 순간과 경험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을 간직한 젊은 날을 용서하고 스스로와 화해하기 위해 저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모든 시간이 축적된 결과가 오늘날의 제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겸연쩍음조차 다독여주고 싶어집니다. 겸연쩍음의 효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내일 아침에도 무엇인가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며 쑥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겸연쩍은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며 어느새 조금은 지혜로워질 터이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계속하겠습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