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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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병원 등 공공건물의 안전 시공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업체가 짬짜미로 5700억원대 입찰 물량을 나눠 먹고 심사위원들에게 뒷돈을 줘 일감을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철근 누락에 따른 지하주차장 붕괴로 '순살 아파트' 오명을 얻은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2022년 붕괴 사고가 난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의 감리업체도 재판에 넘겨졌다. 입찰제도의 허점을 노린 부패로 혈세가 낭비되고 안전관리도 부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김용식 부장검사)는 공공건물 감리 입찰 담합과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해 68명을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가운데 수뢰 혐의 대학교수 등 6명과 뇌물을 준 감리법인 대표 중 1명은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17개 감리업체와 소속 임원 19명은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5천억원에 이르는 LH 용역 79건과 740억원 상당의 조달청 발주 용역 15건에서 낙찰자를 미리 정하고 서로 들러리를 서주는 등의 방식으로 담합(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LH가 공지하는 연간 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 물량을 나눴는데, 2020년에는 전체 물량의 약 70%를 담합업체가 나눠 가졌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최저가 낙찰로 감리 품질이 저하되거나 일부 업체에 낙찰이 편중되는 부작용을 막고자 2019년에 각각 심사위원 정성평가 비중을 늘리고 기술력 위주로 평가하는 '종합심사낙찰제'와 '상위업체간 컨소시엄 구성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오히려 이를 담합 계기로 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담합으로 경쟁을 피하고 상향된 낙찰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에 쓴 것이다.

업체 상당수는 심사위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감리업체로부터 '좋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을 받고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8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전·현직 대학교수와 시청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등 18명과 뇌물을 공여한 감리업체 임원 20명을 기소했다. 이들에게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뇌물공여 등 혐의가 적용됐다.

뇌물 6억5000만원 상당액은 추징보전했다. 검찰은 "감리업체들이 LH 전관들로 이뤄진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군사작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위원들에게 고액의 현금을 '인사비' 명목으로 지급해 공정이 생명인 공공입찰 심사 점수를 흥정했다"고 지적했다.

업체명을 가리는 블라인드 심사였지만, 회사들은 제안서에 특정 문구 등 표식을 남겨 우회했다. 증거인멸이 쉬운 텔레그램이나 공중전화로 연락하는 주도면밀함도 보였다. 일부 심사위원은 업체끼리 경쟁, 소위 '레이스'를 붙여 더 높은 뇌물 금액을 제시하게 하거나 경쟁사에 꼴찌 점수를 주고 웃돈을 받았다.

여러 업체로부터 동시에 돈을 받는 '양손잡이'도 있었다. 아내에게 "이제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앞으로 (정년까지)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고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요", "여행 가려면 돈 벌어야 해요"라고 문자를 보내거나, 발주청에서 받은 자문 업무를 감리업체 직원에게 대신하게 한 심사위원 사례 등도 적발됐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