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에 떠다니는 암 신호를 분석해 대장암 진단에 활용하는 시대가 열렸다. 세계 1위 액체생검 기업 가던트헬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암 스크리닝 서비스 실드를 허가받으면서다. 대장암 표준검사에 대변·내시경에 이어 혈액 검사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액체생검 분야 새 이정표

피만 뽑으면 끝…대장암 진단 '새 장' 열렸다
가던트헬스는 실드를 45세 이상 성인의 대장암 1차 검진에 쓸 수 있도록 FDA가 승인했다고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국에서 대장암 혈액 검사 제품이 정식 허가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암 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생체검사 대신 혈액으로 암 특성 등을 정밀 분석하는 액체생검 분야에 새 이정표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이번 허가 전에도 실드는 실험실 기반 검사 형태로 2022년 5월부터 미국에서 유통됐다. 하지만 환자가 895달러(약 124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모두 내야 해 활용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FDA 승인으로 미국 공보험인 메디케어는 물론 민간 보험사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줄 수 있게 됐다. 대니얼 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교수는 “혈액 기반 대장암 검진의 새 시대를 여는 큰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대장암은 조기 발견하면 완치율(5년 생존율)이 91%에 이른다. 다른 장기 등으로 전이된 환자는 이 비율이 14%로 뚝 떨어진다. 암 초기엔 특별한 증상이 없다. 검진을 통해 암 유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암 사망률 절반 이하로 낮춘다”

대변검사를 한 뒤 이상이 있으면 내시경 검사를 하는 게 대장암 조기 발견을 위한 표준검사다. 국내 수검률은 40%, 미국도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대변을 채취하는 게 불편한 데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 장을 비우는 과정이 번거로워서다.

실드는 1차 검사를 혈액으로 대체해 검사율 90%를 기록했다. 이 검사를 처방받은 10명 중 9명이 무리 없이 검사에 응했다는 의미다. 대변·내시경 검사는 이 비율이 28~71%다.

올해 3월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혈액 검사 정확도는 83%(민감도 기준)다. 대장암 1~3기 환자 상당수가 혈액 검사만으로 암을 찾아냈다. 미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확도가 74~92%면 대장암 진단에 쓸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아미르알리 탈라사즈 가던트헬스 공동창업자는 “(실드 출시로) 암 사망률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액체생검 주도권 경쟁 치열

몸속 세포는 37조2000억 개다. 이들이 내보내는 유전자 조각의 양은 방대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를 통해 암을 파악한다는 것은 ‘공상과학’ 같은 얘기였다.

가던트헬스는 무의미하던 인체 신호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접목해 진단용 서비스 시장을 열었다. 2012년 창업한 이 회사 서비스를 미국 종양내과 의사 80%가 활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도전장을 던졌다. 지노믹트리는 대변 속 DNA를 분석해 암 신호를 찾는 얼리텍을 판매하고 있다. 젠큐릭스는 혈액을 활용한 콜로이디엑스를 개발했다.

아이엠비디엑스는 차세대유전자염기서열(NGS) 분석으로 췌장암과 간암 등의 위험도를 파악하는 캔서파인드를 선보였다. 싸이토젠은 혈액에 떠다니는 암 신호 물질을 정밀하게 잡아내는 기술로 미국과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