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은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자연, 그리고 청각 장애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스승은 청각 장애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자주 한 말이다. 고야는 46세 때 콜레라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다가 청력을 잃었다. 이후 그의 그림은 한층 깊어졌다. 애쿼틴트 기법의 판화집 ‘카프리초스’를 통해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고발하면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부제를 붙인 용기도 여기에서 나왔다.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전쟁의 재난’ 시리즈 등의 명작들이 청각 장애라는 시련을 겪은 뒤에 탄생했다.
드가의 초기작 ‘욕조’(왼쪽). 시력 상실 후의 ‘목욕 후 목덜미를 말리는 여인’에선 윤곽이 희미해졌다.
드가의 초기작 ‘욕조’(왼쪽). 시력 상실 후의 ‘목욕 후 목덜미를 말리는 여인’에선 윤곽이 희미해졌다.

색깔 구별 못하자 과감한 실험

고야가 스승으로 삼은 렘브란트는 시각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왼쪽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몰리는 외사시(外斜視)를 겪었다. 그래서 입체감을 살리는 데 애를 먹었다. 이런 단점을 만회하려고 그는 먼 곳을 어둡게, 가까운 곳을 밝게 그렸다. 그 결과 현대의 3차원 영상처럼 입체미가 뛰어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이처럼 신체적인 결점을 딛고 예술적 창의성을 꽃피운 인물이 많다.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망막 질환을 앓았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왼쪽 시력이 좋지 않았다. 67세부터는 오른쪽 안구 출혈로 두 배의 고통을 받았다. 주로 쓰던 눈의 시력을 잃은 그는 아픈 눈을 통해 본 사물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이후 왼쪽 눈에도 비슷한 출혈이 생겼다. 이런 고통을 딛고 그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가 공식 기증한 작품만 유화 1100여 점과 판화 1만8000여 점, 드로잉 및 수채화 약 4500점 등 2만3600여 점에 이른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도 망막 질환으로 고생했다. 신체의 움직임 묘사에 뛰어난 그는 36세에 오른쪽 시력이 약해지고 얼마 뒤에는 왼쪽 시력까지 나빠졌다. 이때의 어려움을 그는 윤곽과 그림자의 변화로 극복했다. 그의 초기작에는 표정이나 근육 움직임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지만, 후기작에서는 거친 윤곽과 굵은 그림자가 두드러져 보인다. 망막 질환이나 망막 중심부 황반 질환이 생기면 사물의 중심부가 왜곡되거나 흐려져 보인다고 한다.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의 고민은 백내장이었다. 중년 이후 지베르니에 정착해 연못과 수련을 그리던 그가 점차 시력을 잃더니 색을 구별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색깔 감각이 흐트러지자 노랗거나 빨간색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화가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림에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다. 수련과 연못 사이를 선명하게 구분하는 대신 흐릿하게 처리하고, 인식할 수 없는 색은 붉은색으로 과감히 표현했다. 이렇게 해서 빛을 본 작품이 노년의 독특한 ‘수련 연못’이다.
모네의 푸른색 ‘수련 연못’(왼쪽). 백내장 이후의 그림(오른쪽)은 붉은색 위주의 형태가 추상적이다.
모네의 푸른색 ‘수련 연못’(왼쪽). 백내장 이후의 그림(오른쪽)은 붉은색 위주의 형태가 추상적이다.

목이 긴 인물 그린 건 난시 때문

근시와 난시인 화가도 한둘이 아니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은 근시 환자였다. 둘의 그림을 보면 가까운 거리는 자세하게, 먼 거리는 단순하게 생략한 게 많다. 르누아르는 관절염, 세잔은 당뇨 질환까지 앓았지만 이를 이기고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난시 때문에 독창적인 그림을 남긴 화가도 있다. 이탈리아의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스페인의 엘 그레코는 그림 속 인물들을 유난히 기다랗게 묘사했다. 그 이유를 난시에서 찾는 연구자가 많다.

음악에서는 베토벤의 사례가 가장 극적이다. 그가 난청을 감지한 것은 28세,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45세였다. 이후 죽을 때까지 ‘듣지 못하는 작곡가’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른 질병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곁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노력 끝에 남이 듣지 못하는 ‘천상의 소리’를 포착했다. 귀 대신 눈으로 작곡하고, 온몸의 신경을 총동원해 리듬을 만들었다. 그 결과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신의 선율’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금기시됐던 불협화음, 갑작스러운 악상 변화, 일반인의 청각으로는 파악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구조 등의 전위적인 혁신까지 일굴 수 있었다. 그래서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이 청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온 게 아니라 청각 장애 덕분에 나왔다는 말이 등장했다.

역경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난독증 때문에 ‘거꾸로 발상법’의 대가가 된 사례도 흥미롭다.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동화작가 안데르센, 과학자 에디슨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읽고 쓰는 방식에 문제를 겪은 ‘학습장애아’였다. 영국 버진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도 재무제표조차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세 가지. 글자에 갇히지 않은 포괄적 관점, 큰 그림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토머스 웨스트 미국 댈러스대 교수는 난독증을 앓은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시각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난독증으로 학습장애를 앓은 이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활자의 감옥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 그 결과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독서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예술이나 지형 인지, 건축 등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재주를 발휘하는 천재들이 글을 읽지 못하면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불이 쇠를 단련하듯 역경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시력이 약해진 화가는 남다른 감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드가는 “진정한 예술이란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난독증 환자들이 세상을 바꾼 주역으로 성장한 것은 기적과도 같다. ‘난독 천재’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사는 데는 두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기적이란 없는 듯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인류 문명사를 꽃피운 힘의 원천이 이 같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로 가득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