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 모든 생물은 수백만년에 걸쳐 태양의 시간에 맞춰 살도록 길들여졌어요. 그런데 지금우리는 매일 낮이건, 밤이건 머리 위에서 빛나는 '형광등' 아래 살고 있죠. 건강한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빛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조수민 씨(41)는 조명업계, 건설업계에 이같은 화두를 꾸준히 던지는 사람이다. 형태를 다루지 않는 특이한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심미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좋은 빛'이란 결국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스스로 설계해 나가야하는 것임을, 이 과정을 통해 충분한 안목을 쌓아 가야하는 분야임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경의선 숲길, 지하철 9호선의 공공 조명 디자인은 물론 주거 공간의 기획 프로젝트에도 다수 참여한 그는 저서 <빛의 얼굴들(빛을 조명하는 네 가지 인문적 시선)>에서 빛과 사람, 그리고 빛과 사회의 관계를 아우르며 '생태계와 공존하는 빛'에 대해 조명했다.
빛의 인문학을 탐구하는 조수민 "100개 공간엔 100개의 빛이 필요하다"
재택 근무를 하는 1인 가구, 어린 아이가 있는 가구 등 인간은 개인마다 무척 다른 생활 양식을 갖고 있다. 그는 "생활 양식, 거주 형태에 맞는 빛을 찾아 개인별로 삶의 질을 제고하는 게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이 노력이 거의 전무했다"고 말했다. 사전에 조명등의 위치가 정해져 나오는 아파트가 기본적인 거주 환경으로 자리잡으면서 한국인들은 빛을 저관여 상품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오랜 건물이 많은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조명이 기본 설비가 아닌 건물들은 자연스럽게 조명과 가구의 배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거주자의 취향이 반영될 여지가 있고 빛은 자연스레 고관여 요소가 된다.

조씨는 "건설회사가 집부터 가구, 조명까지 턴키로 주거 공간을 확정해 공급하는 방식에 많은 분들이 편리함을 느꼈겠지만, 이제는 획일화된 공간보다는 '나'와 '나의 가족'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리함에서 편안함으로 가는 열쇠는 바로 실내의 빛, 조명이다. 형광등으로 대표되는 실내 조명은 어찌보면 생체 리듬을 교란시키는 존재다. 아침에 아이를 깨울 때 깜깜한 방의 불을 갑자기 켜는 행위는 시각 뿐 아니라 생체리듬과 관련된 신체에도 큰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인간은 눈 위의 조명이 하얗게 빛날수록 낮이라 인식하고 신체를 각성하려고 노력한다. 서서히 주위를 밝혀가는 태양광과 달리 형광등은 정반대로 인간을 깨운다.

"이미 조명의 위치가 확정된 공동주택에서도 우리는 간접 조명으로 스트레스 요소를 크게 줄일 수 있어요. 간접 조명이라고 해서 예쁜 외관의 스탠드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시간의 변화에 따르면서 우리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보조의 광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에 따르면 모든 시간과 공간에 필요한 캘빈값은 다 다르다.
빛의 인문학을 탐구하는 조수민 "100개 공간엔 100개의 빛이 필요하다"
조씨는 "100개의 공간이 있다면 100개의 빛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전해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토크쇼도 열고, 책도 저술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서촌에서 '하모니'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었다. 전시장에는 한 거실이 구현됐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에서는 발 밑에서 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스틱형의 긴 조명은 인테리어 작품처럼 수직으로 온화한 빛을 내뿜었다. 조씨는 천장에 달려 있는 빛을 해체하고 주거 공간 곳곳에 스며드는 빛을 보여줬다.

내방객들은 "카페 같은데?"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그는 이 말에서 주거 공간을 다루는 빛에 대한 희망을 봤다고 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멋진 카페, 해외 숙박 경험 등 좋은 빛에 대한 경험이 쌓인 분들이 많아졌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다만 이 경험이 우리 집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던 것인데, 이 부분을 연결하는 게 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빛의 인문학을 탐구하는 조수민 "100개 공간엔 100개의 빛이 필요하다"
조씨는 시공을 하지 않으면서 빛 환경 개선을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최근 이런 고민을 담은 조명 브랜드 '뷜로'를 내놨다. 명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이름에서 따왔다. 실내공간의 조화로운 빛을 오케스트라로, 조명을 악기로 정의한 데 따른 것이다. 거주자가 악기인 빛을 조율하며 지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인공 조명뿐 아니라 자연의 빛만 지혜롭게 활용해도 인간은 더 건강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게 여러 학자들에 의해 증명이 돼 왔다고도 강조했다.

"아침의 빛은 동쪽에서 들어오죠. 동쪽 창이 있다면 식탁을 그쪽에 두어서 자연광을 충분히 느끼며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이런 생각에 충실하다보면 남향이 좋다는 말이 편협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는 "동서남북의 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요. 북향의 창에서는 하루종일 일정하고 부드러운 빛이, 서향의 창이 있는 공간에서는 늦은 오후의 햇볕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어떤 이에게는 더 편안함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