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양극재 시장에 들이닥친 한파가 거세다. 지난해만 해도 분기당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던 양극재 회사의 이익 규모가 수십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몇몇 회사는 적자까지 기록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있는 자동차 회사나 보조금으로 실적 악화를 만회하고 있는 배터리셀사와 달리 양극재사들은 업황 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 양극재 기업에 직격탄

전기차 부진 직격탄…양극재社 '버티기' 돌입
에코프로는 31일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2분기 5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년 만에 적자로 전환한 셈이다. 사업회사인 에코프로비엠도 영업이익 39억원을 기록하며 실적이 쪼그라들었다. 전년 동기 대비 96.6% 감소한 수치다.

다른 양극재사도 마찬가지다. 포스코퓨처엠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4.8% 감소한 27억원에 그쳤다. LG화학 양극재사업부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3.2% 줄어든 436억원으로 추정된다. 실적 발표를 앞둔 엘앤에프는 660억원의 적자를 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침체)이 공급망 전반으로 퍼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이날 배터리 분리막을 만드는 SK아이테크놀로지는 2분기 58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배터리용 알루미늄 파우치를 제조하는 율촌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제너럴모터스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와 맺었던 1조4872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배터리셀사들이 미국의 보조금을 통해 실적을 방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양극재사들은 보조금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실적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AMPC를 받은 LG에너지솔루션만 해도 AMPC로 4478억원을 받으며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비용 감축 외에 뾰족한 수 없어”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사들은 미국에 공장을 지어봐야 보조금 혜택이 셀 제조사의 10~20%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국내 배터리 공급망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이고,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려면 탄탄한 양극재 회사들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양극재사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양극재사의 수혜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ESS는 대부분 리튬·인산철(LFP)을 사용하고 있는데, 국내 양극재 업체 중에 LFP 양극재를 양산하는 곳은 아직 없다.

보조금도,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기대하기 힘든 양극재사들은 당장은 판매 증진보다는 비용 절감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재무구조 악화를 막으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원가 절감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는 에코프로그룹은 2025년 말까지 전체 비용의 30%를 깎겠다는 목표다. 비용 절감에 성공한 임원은 성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 소재 공급망 전체를 재점검하고 있다. 원재료 공급 가격을 낮추기 위해 국내외 공급처들과 다양하게 만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도 ‘원가를 대폭 절감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중장기적으로는 LFP, 미드니켈 양극재 등 사용처가 다양한 제품을 개발·양산해 판매 경로를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