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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금으로 중국 돕다니…" 기업들 꼼수에 '논란 폭발'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제조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 유럽 등 '서방 본토'에 대한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세제 혜택을 얻거나 고율 관세 폭탄을 우회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1990년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서방 기업들의 제조업 설비를 유치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10여 년 뒤 신재생에너지 제조 역량을 늘리는 것에 집중한 중국은 이제 서방 곳곳을 '중국의 공장'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의 공장' 된 미국·유럽

사진=REUTERS
사진=REUTERS
미국 민주당 소속 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은 31일(현지시간) "중국 및 기타 해외 적대국과 관련된 기업들은 국내 청정에너지 제조를 강화하기 위한 IRA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연방 상·하원 의원 선거를 앞두고 '반(反)중국 어젠다'로 유권자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하이오주는 뿌리 깊은 제조업 역사를 가진 러스트 벨트(Rust Belt) 주 가운데 하나다. 최근엔 전기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청정에너지 품목을 제조하는 시설들을 급속도로 유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2022년 제정된 IRA상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45X)' 혜택을 누리기 위해 미국 대륙 본토에 속속 진출하면서 제조업 강점이 있는 오하이오주도 대표적인 '기업 정착지'가 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보조금을 받으려는 글로벌 행렬에 중국 기업들이 섞여 있다는 데 있다. 브라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중국 기업들을 수혜 대상 기업에서 솎아내겠다는 취지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미국의 세금이 미국의 (자생적인) 태양광 제조업을 저해하고 부당하게 경쟁하는 중국 기업들에 흘러가도록 허용할 수 없다"며 "초당적인 IRA의 혜택은 미국 기업들만 지원하도록 하고 오하이오주 전역의 태양광 공급망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세금으로 중국 돕다니…" 기업들 꼼수에 '논란 폭발'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중국발(發) 공장 공습은 미국 전역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배터리 기업 CATL이 포드와 합작회사를 통해 미시간주에 공장 설립을 모색한 게 대표적이다. CATL과 포드의 미시간 프로젝트는 미 정치권의 반발 등으로 중단됐다. CATL은 제너럴모터스(GM)와도 북미 지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또 다른 전기차 배터리 업체 고션 하이테크 자회사도 미시간주에 공장을 짓고 있다.

보조금 받으려, 관세 피하려진격의 중국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은 중국 엔비전도 내년부터 켄터키주에서 배터리를 양산한다. 트리나솔라(텍사스주), 보비엣 솔라(노스캐롤라이나주), 징코솔라(플로리다주), JA솔라(애리조나주), 러너지(앨라배마주), 후넌솔라(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 중국 태양광 기업들은 미국 전역에 포진해 있다. 중국 룽지그린에너지가 미국 인벤너지와 세운 합작사 일루미네이트USA는 오하이오주에 태양광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방위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브라운 의원의 법안에 조지아주 존 오소프 민주당 상원의원과 루이지애나주 빌 캐시디, 플로리다주 릭 스콧 등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합심했다. 이번 법안 이전에도 작년 12월엔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주) 상원의원과 캐롤 밀러(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 공동으로 대표 발의한 '미국 첨단 제조업 보호법(PAAM법)'이 있다. 현지에선 PAAM법이 오는 9월 하원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세금으로 중국 돕다니…" 기업들 꼼수에 '논란 폭발'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대서양 건너편 유럽에서도 중국의 공장 습격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 기업들이 저가 전기차를 유럽으로 '밀어내기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세를 최대 48%까지 올리는 방안을 도입한다. 그러나 이는 고율 관세 폭탄을 우회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아예 유럽 본토에다 공장을 짓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에 중국 제조사들의 '위장 전술'이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고율 관세의 영향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체리자동차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세우고 있는 공장이 대표적이다. 체리자동차 유럽지사의 찰리 장 사장은 지난달 중순 EU의 관세 인상 발표가 있던 다음날 블룸버그통신에 "본사는 진정한 유럽 기업이 되기 위해 현지 연구개발, 제조 및 유통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가 미국 스텔란티스의 폴란드 공장에서 T03 모델을 생산하고, 비야디(BYD)는 헝가리에 자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EU 당국은 현지 진출을 통해 관세를 우회하려는 중국 제조사들의 신(新)전략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의 '원산지 둔갑' 사례를 적발하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6월 이탈리아에선 자국 자동차업체 DR오토모빌스에 대해 "중국 체리자동차, 베이징자동차그룹(BAIC), 장화이자동차(JAC) 등이 생산한 저렴한 부품을 수입해 이탈리아에서 조립한 뒤 이탈리아산이라고 속였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