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산운용 본사. 사진=신민경 기자
삼성자산운용 본사. 사진=신민경 기자
자산운용사 핵심 먹거리인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 1위 삼성자산운용의 입지가 최근 흔들리는 모양새다. 연기금 투자풀 내 주요 기금들 사이 삼성운용에 맡겼던 머니마켓펀드(MMF) 자금을 빼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기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어서다.

2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삼성운용은 '국유재산관리기금'(국유기금)이 지난달 24일 내부적으로 진행한 연간 성과평가에서 미래에셋운용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양대 운용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연간 성과평가는 각사 자금운용의 성과를 분석해 향후 국유기금의 자금운용 방향에 참고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다. 국유재산관리기금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그동안 삼성운용에 전담으로 맡겼던 MMF 자금을 통째로 미래에셋운용으로 옮겼다.

국유기금은 정부청사와 관사 등 국유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재정부 소관의 공공기금이다. 지난해 말 기준 기금의 전체 평균잔액(평잔)은 1조3330억원으로 이 가운데 연기금투자풀에 맡긴 기금 규모는 1조360억원이다. 이 가운데 MMF의 비중은 10%로 단순 계산하면 약 1000억원이 미래에셋으로 넘어가게 된 셈이다.

이번 평가 결과로 MMF만 넘어간 게 아니다. 삼성과 미래에셋 두 회사가 나눠 굴리던 국유재산관리기금의 자산 배분 비중에서 미래에셋 몫이 더 커졌다. 기금 평가 관계자는 "정량에선 본래는 기금의 약 70%를 삼성운용이, 나머지를 미래에셋운용이 굴리고 있었다면 이제는 '51대 49' 수준으로 미래에셋운용이 더 큰 비중을 운용하게 됐다"며 "미래에셋이 역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에셋운용으로 MMF를 통째로 옮긴 사례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4조원 규모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방폐기금)은 지난달 2분기 성과평가를 진행해 MMF 자금을 삼성운용에서 미래에셋운용으로 옮겼다. 이 역시 기존에 삼성운용만 굴리고 있던 자금이었는데, 성과평가 결과 미래에셋운용이 더 좋은 점수를 내자 자금을 전부 이동시킨 것이다. 지난달 22일 공시된 성과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방폐기금이 투자풀을 통해 굴리는 MMF의 규모는 1024억원이다. 삼성운용으로선 약 1000억원을 뺏기게 된 셈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난해 말에는 예금보험공사 상환기금이 기존 삼성·미래에셋 체제에서 완전위탁형태로 전환하면서 '미래에셋 단독' 체제로 바꿨다. 삼성운용으로선 2000억원가량의 MMF 자금을 미래에셋운용으로 넘겨준 것이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운용은 올해부터 삼성운용의 MMF 자금을 비롯해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상환기금을 단독으로 굴리게 됐다.

투자풀을 통해 기금 여윳돈을 굴리는 한 기금의 관계자는 "자금 운용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금 규모가 작을 땐 두 운용사에 나눠서 맡기는 것보다 한 곳에 몰아서 주는 게 수익률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며 "최근 기금들 성과평가에서 미래에셋이 삼성이 맡던 MMF 자금을 끌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금의 한 관계자도 "미래에셋이 투자풀 주간사로 합류하면서부터 기금들이 중장기 자산을 미래에셋으로 많이 옮겼다"며 "단기상품인 MMF는 운용사간 성과 차이가 크게 없어 기존 삼성운용을 유지하던 곳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 이마저도 미래에셋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MMF는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단기 금융투자상품이면서도 비교적 수익률이 안정적이다. 기금들이 연기금투자풀 제도를 통해 굴리는 상품 중에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주요 투자풀 기금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경쟁사인 미래에셋에 MMF 자금을 주는 일이 반복되자 삼성운용 관련 조직에는 비상이 걸렸다.

삼성운용의 입지 축소가 반영된 단적인 예가 연기금 투자풀 내 시장 점유율이다. 총 수탁고가 60조원에 달하는 연기금 투자풀은 OCIO시장에서 가장 기금 규모가 큰 제도다. 총 수탁고 58조9741억원 중 삼성운용이 약 60%를, 미래에셋운용이 나머지 40%를 굴리고 있다. 처음 미래에셋운용이 삼성운용과 함께 투자풀 주간사로 나섰던 2021년 4월 미래에셋운용의 점유율이 약 18%에 불과했다. 3년 사이 미래에셋운용 점유율이 2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운용 관련 조직에선 연기금 투자풀에서 삼성의 점유율을 넘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지만 삼성운용의 경우 내부적으로 OCIO 조직이 상장지수펀드(ETF) 사업에 밀려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미래에셋에 계속 밀리면서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MMF는 운용사별 차별화가 어렵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기금이 번갈아 맡기는 경향이 있다"며 "MMF 자금 이탈이 자사 기금운용의 질이 저하됐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풀 내 총 MMF 운용 비중이 미래에셋보다 높다"고 부연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