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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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기업들이 정부에 제기하는 반덤핑 및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대부분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철강, 석유화학, 바이오, 배터리, 신소재 등 한국 주력 업종을 중심으로 중국 기업들이 ‘저가 공세’나 지식재산권 침해를 벌이는 사례가 급증하는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일각에선 중국 기업들이 일반 제조업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전환하면서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가 대거 줄어들자 나타나는 현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까지 나선 반덤핑 제소

韓 제조업 투자 늘리는 中…첨단기술 노린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기업의 반덤핑 제소 건수는 6건으로 집계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제소 건수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직후인 2002년 기록한 최고치(11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식재산권 침해 제소도 상반기 4건으로 파악됐다. 연말이면 기존 최고치인 2010년의 12건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덤핑 제소는 외국 기업의 저가 공세를 견디지 못한 해당 업계가 정부에 관세 부과 등 조치를 요청하는 제도다. 그간 국내 기업들의 반덤핑 제소는 주로 중소·중견기업이 중심이 돼 합판, 섬유 등 개발도상국의 저가 수입품을 대상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까지 접수된 6건은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제조 수출품에 집중됐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 대기업과 대형 석유화학업체가 대부분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제소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대기업은 대상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최대한 반덤핑 제소를 삼가 왔다”며 “그만큼 지금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도 과거에 비해 고도화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제소 대부분은 중국 기업의 바이오, 배터리, 신소재 등 첨단 제품 특허권 및 영업비밀 침해 건이 차지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산 ‘짝퉁(가짜)’ 제품에 대해 상표권과 디자인권을 지켜달라는 제소가 대부분이었던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는 중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좁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자본력 앞세워 국내 제조업에 투자

중국의 공세는 무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421건, 투자액은 29억9000만달러로 불과 반년 만에 역대 최고치인 2018년(27억4200만달러)을 넘어섰다. 지난 한 해 전체 투자액(15억8000만달러)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로, 중국 산하에 있는 홍콩의 한국 투자액(8억3000만달러)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38억달러를 넘어선다. 상반기 외국인 직접 투자액(153억달러)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업종별로는 상반기 중국의 투자액 가운데 76%가 제조업에 집중됐다. 이 중 79%는 전기전자(반도체 등), 화학공업(2차전지 등)이었다. 문제는 중국이 정상적인 투자로 위장해 교묘하게 기술을 유출하는 사례가 적잖다는 사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해외기술유출범죄 12건 중 10건을 중국이 차지했다.

이재민 산업부 무역위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정부가 한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정영효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