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그리기(1948). 어디서부터 그림이고, 어디까지 그림인가? 어떤 손이 더 먼저인가? 에셔는 이 같은 '순환'을 우주의 논리 중 하나로 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천착했다.
손 그리기(1948). 어디서부터 그림이고, 어디까지 그림인가? 어떤 손이 더 먼저인가? 에셔는 이 같은 '순환'을 우주의 논리 중 하나로 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천착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수학을 못 할 리가 없는데….”

그 남자에게 과외를 해 준 수학자들은 모두 이런 말을 하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학자들이 보기에 남자의 그림은 어려운 기하학 이론을 알아야 그릴 수 있는, ‘미술 역사상 가장 수학적인 그림’이었거든요. 많은 수학자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는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 영국의 로저 펜로즈 경(수학자 겸 이론물리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나는 수학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겸손의 표현일 거야.’ 수학자들은 웃어넘겼습니다. 다르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수학 이론을 알아냈다고? 천재가 틀림없어. 수학을 제대로 배운다면 더욱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에게 특별 과외를 해 줘야겠어.

하지만 이런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학자들의 열정적인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남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혀 모르겠어요. 나는 수학을 정말 못 했다니까요! 계산을 못 해서 낙제한 적도 있단 말이에요.

누구보다도 수학을 잘할 것 같은데 사실은 ‘수포자’(수학 포기한 사람)였던 이 남자는,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 오늘은 그의 신비로운 작품 세계를 돌아봅니다.

달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법

여러분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볼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1960년 에셔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달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 세상 사람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자화상(1929).
자화상(1929).
에셔가 말하는 네 가지 유형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①시인과 같은 사람들. 이들은 달을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봅니다. 달을 보며 여러 감성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여기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요. 요즘 표현대로라면 ‘문과형 인간’입니다. 그 다음 유형은 ②천문학자와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달을 ‘지구의 위성’으로 봅니다. 이들은 달과 지구의 관계를 이해하고, 관찰과 계산을 통해 이를 정확한 용어와 숫자로 표현하려는 이들입니다. 말하자면 ‘이과형 인간’입니다.

가장 흔한 세 번째 유형은 ③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일상을 살기 바쁜 이 사람들에게 달은 ‘별로 밝지 않은 가로등’과 다름없는, 사실상 의미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 이들에게 달에 관한 질문을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오겠지요. “갑자기 웬 쓸데없는 달 타령이야?”

그리고 마지막 유형인 ④예민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달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받아들입니다. 지구에 사는 작은 인간에 불과한 자신이 그 우주 먼 곳에 있는 달의 빛을 볼 수 있다는 것, 달의 이모저모를 바라보며 그 영원한 신비를 탐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요. 매일 뜨는 달에서 이 사람들은 늘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에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에셔는 감각이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자연을 사랑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독특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종종 다른 유형에게 조금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에셔가 그랬습니다.

에셔는 공부를 못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무작정 외워야 하는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성적이 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전 과목이 하위권이었습니다. 수학은 물론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에셔는 유급에 이어 졸업 시험에서 낙제하면서 졸업장을 따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건축 기술을 배워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입학한 건축 학교에서도 그의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았습니다.
에셔 카스트로발바(1930). 그가 풍경을 그린 판화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에셔 카스트로발바(1930). 그가 풍경을 그린 판화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행히도 에셔에게는 자신의 독특한 성향을 이해해주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의 어느 날, 에셔는 갑자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건축은 나랑 잘 안 맞아요. 대신 교양 수업으로 들은 판화가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판화를 그리는 판화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는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판화가라니…. 그래도 얘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그리고 물었습니다. “예술가는 먹고 살기 어려운 직업이야. 그래도 이 일을 하고 싶니?” “네.” “그래.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이렇게 에셔는, 다소 뜬금없이 판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셔는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더욱더 작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에셔가 주로 제작한 건 풍경을 그린 정교한 판화. 그의 작품은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었습니다. “에셔의 그림은 너무 차가워. 예술가다운 뜨거운 감정이나 매력이 없어.” 냉정하게 말하자면, 에셔는 ‘그저 그런 판화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요.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만 해도 판화가로서 에셔의 능력은 별볼일 없어 보였습니다. 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도, 살면서 성공해본 경험도, 독창적인 작품 세계나 비전도 그에겐 없었으니까요. 에셔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주 자괴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유대감(1956). 두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끈으로 구성돼 있다. 에셔는 애처가였다. 스스로 벌어 처자식을 먹여살리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에셔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유대감(1956). 두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끈으로 구성돼 있다. 에셔는 애처가였다. 스스로 벌어 처자식을 먹여살리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에셔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1935). 에셔는 일찌감치 '사람이 2차원 평면에서 어떻게 3차원을 보는지'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위해 원근법을 공부했다. 원근법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1935). 에셔는 일찌감치 '사람이 2차원 평면에서 어떻게 3차원을 보는지'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위해 원근법을 공부했다. 원근법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은 에셔에게 작품 세계의 기초를 쌓아 나가는 ‘축적의 시간’이었습니다. 에셔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성실하게 세상을 관찰하며 느낀 것들, 판화가로서 갈고 닦은 기술은 1936년 스페인 여행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들른 걸 계기로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각양각색의 타일로 틈새 없이 덮인 그곳의 벽과 바닥 무늬를 보고 에셔는 혼잣말했습니다. “그래, 이거야.”

그래서 이걸 왜 그렸는데?

타일 무늬가 대체 어쨌다는 걸까. 에셔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법칙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에셔가 보고 영감을 얻은 알함브라의 테셀레이션 문양.
에셔가 보고 영감을 얻은 알함브라의 테셀레이션 문양.
에셔가 그린 테셀레이션 그림. 두 종류의 새가 빈틈없이 종이를 메우고 있다.
에셔가 그린 테셀레이션 그림. 두 종류의 새가 빈틈없이 종이를 메우고 있다.
낮과 밤(1938). 낮과 밤 사이로 흑백의 들판이 흰색과 검은색의 새로 변해 날아다닌다. 어디까지 들판이고, 어디서부터 새라고 할 수 있을까?
낮과 밤(1938). 낮과 밤 사이로 흑백의 들판이 흰색과 검은색의 새로 변해 날아다닌다. 어디까지 들판이고, 어디서부터 새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우주는 한낱 인간의 두뇌가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크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때로 인간이 보기에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법칙은 있습니다. 그걸 과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신의 뜻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에셔는 말했습니다. “평면을 빈틈없는 모양으로 채우는 건, 우리가 무한한 혼돈이 아니라 아름다운 질서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저에게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인식하고, 배우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건 이런 질서 덕분입니다. 이 우주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경이롭고 영원한 질서 말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평면을 공간으로 채우는 방식에서 뭔가 우주의 법칙 같은 게 느껴지는데, 그걸 그리고 싶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하는 ‘우주의 법칙’ 얘기는 놀랍게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법칙, 그래서 ‘우주의 언어’로 불리는 수학에 테셀레이션(틈새 없이 서로 맞물리는 모양으로 평면을 완전히 덮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분야가 있었던 겁니다. ‘수포자’였던 에셔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지만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에셔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평평한 2차원의 그림이나 화면을 보며 거기서 3차원의 공간을 떠올립니다. 이는 에셔에게 마치 ‘인간이 제한된 감각과 두뇌로 이 우주를 파악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에셔는 평면을 다양한 모양으로 덮는 작품, 거울에 비친 신비로운 이미지,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절묘한 착시 현상 등을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세 개의 구체(1946). 에셔는 거울 속 세상을 비롯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는 보이는 세상'에 주목했다.
세 개의 구체(1946). 에셔는 거울 속 세상을 비롯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는 보이는 세상'에 주목했다.
마법의 거울(1946). 거울이라는 주제와 평면이라는 주제를 결합한 작품이다.
마법의 거울(1946). 거울이라는 주제와 평면이라는 주제를 결합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에셔는 자신이 상상하는 걸 곧바로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관찰력과 상상력이 뛰어났을 뿐, ‘미술 천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셔는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고 수없이 스케치를 다시 그려 가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내 목표는 가장 좋은 방법을 사용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거듭되는 시행착오에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림을 좀 더 잘 그릴 수 있었다면! 내가 가진 건 이를 악물고 ‘안 되는 걸 알지만 어쨌든 해보고 싶다’고 다짐하는 집요함,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 욕구뿐이다.

에셔는 그제야 자신이 젊은 시절 판화라는 매체에 끌렸던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일반적인 그림은 아무리 잘 그려도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판화는 모양을 새긴 판만 있으면 얼마든지 찍어내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자신만이 봤던 광경을, 예전부터 에셔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집요함과 끈기

하지만 에셔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작품이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예술이야. 에셔의 그림에는 감정이 없어. 그건 그냥 눈속임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난에 불과해.” “신기하긴 한데, 아름답진 않아. 이게 과연 예술일까?” 대중과 평론가들은 에셔의 그림을 두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미술사를 통틀어 에셔와 비슷한 화가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에셔도 대부분의 현대미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화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왜 그렸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에셔는 이렇게 푸념하곤 했습니다.
판화 갤러리(1956). 여러 세상이 그림 속에 공존한다. 이 그림을 위해 에셔는 수없이 연구를 반복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판화 갤러리(1956). 여러 세상이 그림 속에 공존한다. 이 그림을 위해 에셔는 수없이 연구를 반복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왼쪽 윗부분 기둥 모양이 못생겼으니 고쳐야 한다"고 하자 에셔는 한동안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저 기둥은 저렇게 만들어야만 해. 내가 아주 정확하게 그렸기 때문에 다르게 그릴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에셔는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천착했다.
반면 수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수학적인 개념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아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를 찾아와 이런 찬사를 보내는 수학자들도 많았습니다. “이 모양은 전형적인 ‘테셀레이션’ 문제군요.” “이 작품은 ‘리만 곡면’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품고 있어요.” 하지만 에셔는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에셔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여러 모양을 만드는 수학적 ‘팁’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수학자들과는 친하게 지냈지만요.
수학자 펜로즈는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에셔의 그림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양을 간단하게 만들어내는 걸 취미로 삼았다. 어느날 이 계단의 모양을 떠올린 펜로즈는 에셔에게 이를 그려서 보냈고, 에셔는 그 그림을 토대로 '상승과 하강'을 그렸다.
수학자 펜로즈는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에셔의 그림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양을 간단하게 만들어내는 걸 취미로 삼았다. 어느날 이 계단의 모양을 떠올린 펜로즈는 에셔에게 이를 그려서 보냈고, 에셔는 그 그림을 토대로 '상승과 하강'을 그렸다.
상승과 하강(1960). '펜로즈 계단'을 모티브로 만든 그림이다. 에셔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상승과 하강(1960). '펜로즈 계단'을 모티브로 만든 그림이다. 에셔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예술가에게도, 수학자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에셔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이제 새로운 모양을 못 만들 것 같다’는 두려움에도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의 편지에는 이런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늘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오직 위로 올라가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 발짝도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가끔은 속이 아픕니다.

그래도 에셔는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에셔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만드는지 아니? 사실 나도 몰라. 하지만 이런 그림을 만들고 보여주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단 말이야.” 그는 극도로 섬세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무한’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그는 끝없이 줄어드는 듯한 모양을 표현하려 했고, 이를 위해 돋보기를 세 개나 겹쳐 쓰고 2mm 크기의 극히 세밀한 모양을 수없이 그려 넣어야 했습니다.
서클 리미트 3(1959).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고기의 크기는 무한히 작아지는 듯하다.
서클 리미트 3(1959).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고기의 크기는 무한히 작아지는 듯하다.
다행히도 에셔의 오랜 노력은 시간이 흐르며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50대에 들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겁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로 유명한 영국 미술사학자 곰브리치 등 유명한 미술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주목했습니다. 수학계에서의 인지도도 더 높아져서, 에셔는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의 초청을 받아 수학자들 앞에서 자기 작품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학자들은 에셔의 작품과 생각에 늘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셔가 수학을 못한다는 게 정말 신기해. 그의 작품은 정말 수학적인데 말이야. 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눈’이 좋으면 수학적인 진리를 알아볼 수가 있구나.

그렇게 에셔는 1972년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널리 전하며 살았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친구였던 그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말년에 돈을 많이 벌게 된 뒤에는 검소하게 살면서 수입의 대부분을 기부했습니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말년이었습니다.

에셔가 알려주는 비밀

1964년, 에셔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기차 안에서 저는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높이에 떠 있는 여러 모양의 구름에 압도당한 거지요.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감과 입체감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 네덜란드처럼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도 이런 사실을 갑자기 깨달을 수 있더군요. 사람으로 붐비는 곳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갑자기 시간을 초월해 무한한 우주를 볼 수 있는 거지요.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혹시….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조우(1944). 그림 무늬에서 나온 흰 인간과 검은 괴물이 그림 가운데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다.
조우(1944). 그림 무늬에서 나온 흰 인간과 검은 괴물이 그림 가운데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다.
이 편지를 보낼 때 에셔의 나이는 예순여섯 살. 그간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날 하늘을 봤을 텐데도, 에셔는 마치 태어나서 하늘을 처음 보는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이를 작품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에셔의 작품에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나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비춰 봤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의견을 내놨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수학 이론을 담고 있다” “아니다. 사람이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의학적 방식을 담은 것이다” “작품에서 심오한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윤회 사상을 담은 거 아닐까?”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에셔는 이렇게 답하곤 했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는 건 기쁘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수학 이론이나 철학을 작품에 담지 않았어요. 제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을 최대한 정확하게 그렸을 뿐이지요.
파충류(1943). 도마뱀은 그림에서 튀어나와 다시 도마뱀으로 돌아간다.
파충류(1943). 도마뱀은 그림에서 튀어나와 다시 도마뱀으로 돌아간다.
에셔가 솔직하게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을 최선을 다해 그림으로 옮겼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수학·과학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세상을 뒤흔들겠다는 포부나 심오한 철학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끈기와 집념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사물이 오목한 동시에 볼록하고,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위로 가면서도 아래로 갈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중력을 적용받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마법적인 표현 기법을 개발해낼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이 그림의 이상한 부분이 시작된 걸까? 어느 부분에서 시각이 왜곡된 걸까?’ 이렇게 생각하며 에셔의 작품 속 신비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마치 추리 소설을 보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단서를 잡고 나면, 처음에는 이상하고 혼란스럽게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논리적이고 잘 짜인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폭포(1916). 바닥의 물은 아래로 흘러가.... 폭포가 돼 떨어진 후 다시 아래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폭포(1916). 바닥의 물은 아래로 흘러가.... 폭포가 돼 떨어진 후 다시 아래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벨베데레(1958). 엇갈리는 기둥을 비롯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을 관측할 수 있다.
벨베데레(1958). 엇갈리는 기둥을 비롯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을 관측할 수 있다.
에셔의 삶과 작품을 통해 저마다 다양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에셔의 삶에서 ‘출발이 별로 좋지 않아도 집요함과 끈기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을 표현할 수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반면 작품을 통해서는 우리가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다는 점, 우리가 평소 쉽게 봐 넘기는 일상의 풍경이나 사물들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지요.

나아가, 어려운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에셔가 ‘시각’을 통해 스스로 수학적인 그림을 그려낸 것처럼, 우주의 법칙에 접근하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는 점. 그만큼 뭔가를 ‘잘 본다’는 것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 그렇게 시각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인간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기적 같은 능력이라는 사실들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The Magic Mirror of Escher (Bruno Ernst 지음), Escher (Bool, Kist, Loucher, Wierda 지음), Escher on Escher(Vermeulen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