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의 정점에 험프리 보가트가 있다면, 한국 누아르에는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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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리볼버>
깡마른 몸에 얻어터진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여자. 이 여자 앞에 앉은 남자는 낡은 쿠키 깡통을 건넨다. 깡통 안에는 깡통만큼이나 낡은 헝겊으로 싸인 리볼버 한 자루가 있다. 한참 동안 리볼버를 바라보는 여자. 그런 그녀를 응시하는 리볼버. 이 둘의 만남으로 여자의 운명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된다.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리볼버>는 전작 <무뢰한>으로 수많은 누아르 팬을 거느리게 된 오승욱 감독의 신작이다. 한국 누아르 영화의 산실, 사나이 픽처스(<신세계>, <아수라>, <무뢰한>, <화란> 등 제작)가 내놓은 새로운 타이틀이기도 하다. <리볼버>는 아파트 한 채와 7억을 약속받고 모든 비리를 뒤집어쓴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을 중심으로 한다. 이야기는 수영이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자유인으로 복귀한 첫날을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늘 그렇듯 누아르의 주인공은 세상 편할 날이 없다. 수영은 만기 복역했지만 눈앞에는 약속된 아파트도, 돈도,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경찰 동료이자 연인도 사라진 상태다.
▶▶▶[관련 인터뷰] 아수라·신세계·무뢰한…누아르 하나만 패는 사나이, 한재덕 [아르떼 프리미엄]
이야기의 중심축은 수영이 사건과 관계된 인물을 한 명씩 쫓으며 (혹은 처단하며) 돈과 아파트를 받아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참 많이도 맞고, 많이도 때린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수영이 벌이는 많은 격투와 대결에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볼버’는 실질적으로 자주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대부분의 싸움에서 그녀의 무기는 그녀가 전 사수에게 빌려 온 3단 봉이 대신한다. 아마도 이러한 지점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의문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영화 속 ‘리볼버’는 수영이 사용하는 절대적 무기가 아닌 일종의 맥거핀적인 상징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장면처럼 리볼버는 수영이 복수, 혹은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를 실행할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지극히 작고 마른 몸을 가진 그녀가) 수많은 남성 악당들을 대적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다. 따라서 수영은 ‘리볼버’를 손에 얻음으로써 그녀의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잠시 박탈당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선 장면에서 보여지는 녹슨 박스 안의 리볼버와 얼굴이 상할 대로 상한 수영의 투 샷은 이 둘의 존재를 하나로 묶는, 혹은 둘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약하면서도 치명적인 ‘수영’이라는 양가적 인물과 관련하여 배우 전도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무뢰한>이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같은 작품들에서 ‘누아르적’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들은 소위 ‘팜므 파탈’의 연장선에서 존재하는 소품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리볼버>의 수영은 약속받은 돈, 그리고 시간의 대가를 찾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뚝심 있게 수행하는 중심인물이다. 그녀의 요구는 사랑 (무뢰한)과 연계된 것도 아니고, 탐욕 (지푸라기)에 의한 것도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당위적인 행위로 비춰진다. 이러한 수영의 주체성을 영화의 장르적인 색채 안에서 최대한 무자비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면, 전도연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아닐까.
수영의 고행을 돕는 사이드 킥, ‘윤선’ 캐릭터를 맡은 임지연 역시 <리볼버>에 엄청난 에너지를 수혈한다. 그녀의 표정은 때로는 기괴하고, 치졸하지만 사랑스럽다. 이 둘의 조합은 마치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 이혜영과 전도연의 전복적이면서도 아이코닉한 앙상블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이혜영의 ‘경선’과 <리볼버>에서 전도연의 ‘수영’은 많은 지점에서 닮았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중심인물 모두에게 나름의 ‘해피 엔딩’을 부여하며 비교적 어둡지 않은 결말을 선사한다. 영화의 엔딩은 이 작품을 죽음과 회의주의가 난무하는 정통 누아르와도, 정통 복수극과도 거리를 두게 하는 지점이지만 동시에 이는 <리볼버>만의 하이브리드적 감성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영의 캐릭터 스터디로도, 수영과 윤선의 버디물로도, 이들의 악당인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지창욱)의 컬트적인 존재로도 영화는 매우 만족스럽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관련 인터뷰] 아수라·신세계·무뢰한…누아르 하나만 패는 사나이, 한재덕 [아르떼 프리미엄]
이야기의 중심축은 수영이 사건과 관계된 인물을 한 명씩 쫓으며 (혹은 처단하며) 돈과 아파트를 받아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참 많이도 맞고, 많이도 때린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수영이 벌이는 많은 격투와 대결에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볼버’는 실질적으로 자주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대부분의 싸움에서 그녀의 무기는 그녀가 전 사수에게 빌려 온 3단 봉이 대신한다. 아마도 이러한 지점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의문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영화 속 ‘리볼버’는 수영이 사용하는 절대적 무기가 아닌 일종의 맥거핀적인 상징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장면처럼 리볼버는 수영이 복수, 혹은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를 실행할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지극히 작고 마른 몸을 가진 그녀가) 수많은 남성 악당들을 대적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다. 따라서 수영은 ‘리볼버’를 손에 얻음으로써 그녀의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잠시 박탈당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선 장면에서 보여지는 녹슨 박스 안의 리볼버와 얼굴이 상할 대로 상한 수영의 투 샷은 이 둘의 존재를 하나로 묶는, 혹은 둘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약하면서도 치명적인 ‘수영’이라는 양가적 인물과 관련하여 배우 전도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무뢰한>이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같은 작품들에서 ‘누아르적’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들은 소위 ‘팜므 파탈’의 연장선에서 존재하는 소품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리볼버>의 수영은 약속받은 돈, 그리고 시간의 대가를 찾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뚝심 있게 수행하는 중심인물이다. 그녀의 요구는 사랑 (무뢰한)과 연계된 것도 아니고, 탐욕 (지푸라기)에 의한 것도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당위적인 행위로 비춰진다. 이러한 수영의 주체성을 영화의 장르적인 색채 안에서 최대한 무자비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면, 전도연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아닐까.
수영의 고행을 돕는 사이드 킥, ‘윤선’ 캐릭터를 맡은 임지연 역시 <리볼버>에 엄청난 에너지를 수혈한다. 그녀의 표정은 때로는 기괴하고, 치졸하지만 사랑스럽다. 이 둘의 조합은 마치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 이혜영과 전도연의 전복적이면서도 아이코닉한 앙상블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이혜영의 ‘경선’과 <리볼버>에서 전도연의 ‘수영’은 많은 지점에서 닮았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중심인물 모두에게 나름의 ‘해피 엔딩’을 부여하며 비교적 어둡지 않은 결말을 선사한다. 영화의 엔딩은 이 작품을 죽음과 회의주의가 난무하는 정통 누아르와도, 정통 복수극과도 거리를 두게 하는 지점이지만 동시에 이는 <리볼버>만의 하이브리드적 감성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영의 캐릭터 스터디로도, 수영과 윤선의 버디물로도, 이들의 악당인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지창욱)의 컬트적인 존재로도 영화는 매우 만족스럽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