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비극 멈추려면 더 많이 말해야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를 다룬 영화라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다. 햇살이 강렬한 여름날 늦은 오후, 사람이 많지 않은 영화관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현재로 전환된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정도의 참담한 기분이었다.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는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그중 처음 봤을 때 필자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메모리얼’(2005)이다. 독일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이 메모리얼은 기념비도, 기념관도 아닌 광장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도로와 뚜렷한 경계가 없는 이 광장을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기둥은 모두 가로 95㎝, 세로 237.5㎝의 동일한 규격과 동일한 형태이며 높이에서만 차이가 있다. 최대 높이는 4m다. 격자배열로 늘어서 있는 이 기둥들이 나열된 모습을 멀리서 보면 언뜻 물결이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메모리얼과 주변을 구분하는 경계가 없고, 도로와 인접한 곳에는 지면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낮은 기둥들이 설치된 까닭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런데 기둥 사이에 좁게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둥들이 높아지면서 도시 경관이 차단되는 순간이 생긴다. 위치감각은 상실되고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이 마음 한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기둥들은 일견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사실 방향성을 인지할 수 없는 미로 같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을 온전히 개인의 몸과 심리에 작용하는 경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기둥 사이로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심리적 불안과 위압감, 그리고 길을 잃은 느낌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의미 없이 존재하는 콘크리트 기둥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해석이 중요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메모리얼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설계자인 피터 아이젠먼의 웹사이트 프로젝트 페이지에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였다. “합리성과 질서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본래의 목적에 비해 과도해지면 되레 인간의 이성과 동떨어지며, 그렇게 되면 모든 질서 체계에 내재된 혼란과 혼돈이 드러난다.”

이처럼 기이한 형상의 메모리얼은 베를린의 평범한 장소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채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에 형성된 추상성을 보완하기 위해 광장 지하에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전시 공간이 조성돼 있다.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메모리얼들로부터 ‘과연 이 매체들이 현재 얼마만큼의 효용성을 가지는가’를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현재의 장소에 돌을 쌓아 올린다. 그러면서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을 알리고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과거의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폭력과 잔혹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과연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과거를 전달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더 많이 생각해내야 한다. 과거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참담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