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버팀목이던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1일(현지시간)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발표된 미국 제조업 지수를 ‘트리거’로 2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급락했다. 미국 증시 고점 논란, 빅테크들의 과도한 인공지능(AI) 투자 우려도 투매 심리를 자극하며 외국인들의 ‘패닉셀’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이날 하루 동안 유가증권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은 78조6430억원 증발했다. 2020년 3월 19일 시총 89조6190억원이 날아간 후 역대 두 번째 규모다.

○18만닉스, 8만전자 깨졌다

'美경제 엔진 냉각'이 방아쇠…코스피 시총 하룻새 78조원 증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폭락을 주도한 것은 ‘반도체 투톱’이었다. SK하이닉스가 무려 10.4% 폭락한 17만3200원에 마감하며 ‘18만닉스’가 깨졌다. 이날 SK하이닉스 하락 폭은 2011년 8월 18일(-12.24%) 후 13년 만의 최대다. 삼성전자도 이날 시총 20조8942억원을 까먹으며 7만9600원(-4.21%)에 거래를 마쳤다. 이 밖에 현대차(-3.75%) 기아(-4.46%) KB금융(-5.78%) 등 대부분의 시총 상위주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알테오젠(-7.52%) 셀트리온제약(-8.91%) 리노공업(-6%) 등 주요 종목이 밀리면서 지수가 2022년 9월 26일(-5.07%) 후 최대 낙폭을 나타냈다.

이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발작에 가까운 급락세를 보인 것은 미국 증시 고점 논란, 지수 상승을 이끌어온 AI의 수익성 우려, 미국 경기 침체 공포 등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린 영향으로 분석된다. 연이은 상승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갑자기 불거지며 투매 심리가 급격히 확산했다는 것이다.

아시아 증시 마감 후 발표된 미국의 지난 7월 실업률도 전월 4.1%보다 0.2%포인트 오른 4.3%를 기록해 4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루이지애나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등으로 미국의 비농업 고용 증가폭이 전달보다 36% 줄어든 월간 11만4000명에 그친 탓으로 분석된다. 이는 2021년 2월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비농업 일자리가 17만5000건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증시 내부적으로는 상승을 주도해온 AI 사업에 대한 기대가 옅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빅테크 실적이 공개되며 AI가 돈을 벌기보다는 까먹는 사업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세 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맞물려 급락장이 나왔다”며 “AI에 대한 환호와 기대에 가려져 있던 경기 침체 가능성이 빅테크 실적 발표를 계기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 경기 침체 근거 희박” 주장도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이 같은 증시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미국 경기 침체를 전망할 근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색깔이 인플레이션 민감 장세에서 경기 민감 장세로 넘어가고 있다”면서도 “PMI의 선행지표를 보면 경기 확장을 뜻하는 기준 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고 전망했다.

이날 외국인의 코스피200 선물 순매도 규모가 장 후반 감소한 것도 증시를 하락 추세로 속단하기 어렵게 한다. 장중 2조7000억원어치 이상을 팔아치우던 외국인이 점차 규모를 줄여 순매도는 1조9202억원으로 2조원을 밑돌았다.

다만 미국 대선 불확실성, 밸류에이션 부담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극에 달한 만큼 당분간 경기민감주보다는 경기방어주로, 성장주보다는 가치·배당주로 피신하는 전략이 맞는다는 분석이 많다. 경기방어주로 분류되는 SK텔레콤 주가는 이날 0.93% 올랐고, 대표 배당주인 KT&G는 -0.65%로 선방했다. KT는 0.26% 상승했다.

박한신/뉴욕=박신영 특파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