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투룸 등 다양한 매물이 나와 있는 대치동 부동산. 강영연 기자
원룸, 투룸 등 다양한 매물이 나와 있는 대치동 부동산. 강영연 기자
※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대치동 교육의 일단을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로 지난 4월15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대치동 이야기'. 지난 16회동안 학생들의 일상, 학원가의 치열한 경쟁에 관해 살펴봤다. 17회부터는 대치동이라는 동네 자체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입성을 꿈꾸지만, '대치동'으로 통칭되는 이 일대 교육가가 의외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아 의외로 많지 않을 수 있다. 수십억~수백억 자산가들이 몰려 사는 우·선·미(우성·선경·미도아파트) 같은 전통 부촌과 학원 강사, 지방 유학생들이 월세살이 하는 대치4동 일대에 이르기까지…

이제부터는 대치동 생활권에 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곳 입성을 꿈꾸는 예비 대치동 힉부모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이 동네를 짐작해볼 수 있도록 '초기 스케치'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다.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에서 은마아파트 사거리로 이어지는 대치동 학원가. 대개 대치4동 일대가 대부분인 이 지역에는 학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부터, 원어민 선생님까지 대치동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있다.

특히 한티역에서 선릉역 방면에 있는 대치4동 지역은 블록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대로변에는 대성학원에서 운영하는 두각 등 대형 학원이 있고, 한두 블록 뒤에는 스카이아카데미 등 소규모 학원들이 즐비하다. 삶의 공간은 이보다 한두 블록 더 뒤에 있다. 블록 안 쪽을 걷다 보면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빼곡한 주택가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가족 단위 구성원뿐 아니라 재수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방학 특강이나 주말 특강을 위해 올라온 지방 학생들, 대치동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 등 대치동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대치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비율로 따지면 절반 이상이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月 300만원짜리 방도 없어서 못 구해요"…학생들 '한숨' [대치동 이야기 ⑰]

한 달에 월세만 140만원

대치동 학원가에서 사는 학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수생들이다. 기숙학원의 답답함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시대인재,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을 다니면서 방은 대치동 빌라에 따로 잡는 것이다. 이들이 주로 사는 곳은 원룸이다. 대치동 원룸 시세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20만~140만원 정도. 지난 6월 기준 서울의 33㎡ 이하 연립·다세대 원룸의 평균 월세가 보증금 1000만원에 70만원인 것으로 고려하면 비싼 편이다.

100만원 안쪽의 월세도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런 곳은 '빨간 벽돌'이라고 불리는 구축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길어야 1년 있는 집에 가구까지 사려는 학생들이 없고 대부분 풀옵션 집을 선호한다"며 "특히 여유가 있는 집은 빨간 벽돌 집을 찾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투룸을 구한다. 대치동 투룸 시세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50만~300만원 정도다. 투룸은 부모님이 함께 와서 살거나, 친구 2명이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비싸긴 하지만 이 역시도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치동에서 방을 구하려면 11월 중순 이후 손바뀜이 있는 시기에 와야 한다. 수능이 끝나고 재수생, 고3 등이 빠져나간 방이 그때 나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재학생들도 대치동에 사는 경우가 있다. 방학이 대목이다. 학원별로 이뤄지는 방학 특강을 위해 대치동을 찾기 때문이다. 요즘 열리고 있는 여름방학 특강에 맞춰 방을 얻으려면 6월, 늦어도 7월 초에는 대치동을 찾아야 한다. 재학생이 1~2년 단위로 대치동에 방을 얻는 경우도 있다. 금·토·일 주말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대치동의 A 부동산 관계자는 "지방에서 주말 수업을 듣기 위해 대치동에 방을 얻어놓는 학생들도 있다"며 "방학 특강 때는 매일 있으니까 나은데, 주중에 비워둘 때가 많아 좀 아깝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원룸, 투룸 등 다양한 매물이 나와 있는 대치동 부동산. 강영연 기자
원룸, 투룸 등 다양한 매물이 나와 있는 대치동 부동산. 강영연 기자

원룸 대신 학사도 인기

'학사'에 들어가는 학생도 많다. 학사는 원룸보다 작고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아침에 깨워주고, 저녁에는 방에 돌아왔는지도 확인해준다. 매일 밥을 주고, 빨래, 청소까지 해주는 것도 장점이다. 위치가 먼 학사는 주요 학원까지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이때문에 가격이 원룸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저렴한 곳은 100만원 초반대도 있지만 신축에 서비스가 좋은 학사는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한 재수생 학부모는 "방이 조금 좁긴하지만 어차피 10시까지는 학원에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가격도 기숙학원(월 400만원 이상)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원어민 강사도 대치동의 구성원 중 하나다. 학원이 가깝고 강남 등 서울의 주요 관광지와도 가까워 선호한다고 한다. 특히 잘나가는 원어민 강사는 학원에서 이들을 잡기 위해 방을 얻어주기도 한다. 월세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고, 계약을 학원 이름으로 하고, 강사에게 방을 제공하기도 한다. 재임대는 금지되지만 학원등록증, 강사의 재직증명서 등을 내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원어민 강사는 집주인들이 선호하는 세입자는 아니다. 원어민 강사들은 주말마다 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서 주변 입주민들과 갈등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원어민 강사는 다세대 빌라 보다는 아파트형으로 사생활 보호 및 방음이 잘되는 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 월세 수익률 4% 중반

건물주 입장에서 학원가에 월세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투자다. 이달 준공을 하고 분양을 시작한 빌라는 월세가 280만~310만원 정도다. 분양가가 7억~8억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투자수익률이 4% 중후반대에 달한다. 한 부동산 대표는 "대치동 빌라는 공실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제일 매력적"이라며 "부동산 가치도 꾸준히 오르기 때문에 시세차익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학원가의 특징 중 월세가 1층보다 2층 이상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물 1층을 가장 선호하지만, 학원은 1층에 운영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1층 월세는 150만~180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대신 2층 이상은 200만~400만 정도에서 시작해서 큰길가로 나갈수록 점점 비싸진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식당이 많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1층에서 음식 냄새가 나면 학원들이 입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층에 입주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적이다. 꽃집, 부동산, 미용실 등 냄새가 잘 나지 않고 깨끗한 업종을 선호한다.

최고급 빌라에서 대치동 학군·학원 누려

이 지역에 자취 인구만 사는 것은 아니다. 휘문고 건너편 쪽 블록으로 넘어가면 고급 빌라도 많다. 그 중에서도 초대형 평형대로 구성된 한 빌라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요 재벌가의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유학하는 것과 달리 이 사장의 아들은 이 일대 한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성적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다.

이 사장이 선택한 빌라는 독립된 타운하우스가 단지를 이루고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완전히 제한된다. 단독 테라스 정원 등이 갖춰진 집도 있다. 도곡초, 대현초, 휘문중, 휘문고 등에 진학할 수 있어 학군도 좋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주변의 대치2동사무소 인근 대치르엘아파트도 명문 학교와 학원가를 가까이서 오갈 수 있는 이 일대서 보기드문 새 아파트다. 입주 3년 차인 대치르엘아파트의 84㎡는 지난 4월 실거래가 기준으로 27억원이 넘는다. 네이버 부동산 기준으로 현재 매물 가격은 33억원이다. 전세도 18억 정도는 줘야 한다.
"月 300만원짜리 방도 없어서 못 구해요"…학생들 '한숨' [대치동 이야기 ⑰]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