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평창의 밤을 물들인 루트비히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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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 폐막 공연 리뷰
말코 지휘 콩쿠르 우승자 이승원 지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 협연
베토벤 교향곡 3번 기념비적인 웅장함 부각
말코 지휘 콩쿠르 우승자 이승원 지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 협연
베토벤 교향곡 3번 기념비적인 웅장함 부각
2004년에 시작된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올해로 21회를 맞았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음악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제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강원도민 입장에서는 외국의 뛰어난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고, 다른 지역의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서늘한 강원도의 날씨 속에 피서와 음악 감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행사이다. 온난화 때문인지 평창의 날씨도 많이 더워졌지만, 아직 저녁이 되면 제법 선선해 그럭저럭 피서를 즐길 정도는 되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제는 ‘루트비히’였다. 독일어권에서는 꽤 흔한 이름이지만, 음악사에서 이 이름이 나올 경우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가리킨다고 봐도 좋다. 과연 올해 음악제에서는 베토벤의 작품이 유독 큰 비중을 차지했고,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하는 등 돋보이는 시도가 많았다. 내가 참관한 폐막 공연 역시 베토벤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전반부 순서는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일명 ‘황제 협주곡’이 차지했다. 독주를 맡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는 이번 음악제에서 앞서 몇 차례 공연을 가진 바 있다. 1967년생이니 이제 노장 대접을 받을 나이지만, 그는 강건하면서도 꼼꼼한 타건으로 매우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일부 서정적인 악구에서 템포를 좀 느리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공연장인 뮤직 텐트의 풍부한 잔향을 감안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앙코르로 연주한 베토벤의 바가텔에서는 은은하고 시적인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반주는 생생하고 대비가 뚜렷했으며, 끝까지 독주자를 잘 뒷받침했다. 다만 1악장의 일부 포르티시모 총주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맞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는 전적으로 무난했으나 일부 대목에서는 목관이 현에 묻히는 경향이 있어 아쉬웠다.
이승원은 한국인 최초로 2024년 덴마크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휘자이다. 전반부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그는 2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을 지휘했다. ‘영웅 교향곡’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곡은 많은 전문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는 작품이다. 교향곡의 역사를 뒤바꾸고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연 작품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승원은 1악장부터 셈여림과 템포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강한 극적 효과를 추구했다. 1악장과 3악장은 비교적 경쾌하게 진행됐으며, 특히 3악장 스케르초는 속도감 있고 활기찬 연주였다. 청량감 있는 호른 합주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짝수 악장에서는 이러한 극적 효과가 다소 신파적인 수준에 가까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모든 세부를 강조하려는 지휘자의 노력 때문에 전체적인 짜임새가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었고, 저음 현을 강조한 밸런스는 이런 경향을 한층 두드러지게 했다. 2악장은 악장 자체가 장송행진곡인 만큼 이런 무거움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4악장은 각 세부가 질서정연하게 맞물린 연주였음에도 전체적으로 힘이 너무 들어가 상쾌한 느낌이 부족해 아쉬웠다. 곡의 기념비적인 웅장함을 부각하는 게 지휘자의 목표였다면, 그 점에 한해서는 차고 넘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중은 지휘자의 노력에 열화 같은 박수로 화답해주었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자 공연에서 받은 인상을 반추하기보다는 서둘러 공연장을 떠나기에 바빴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타지에서 며칠 일정으로 휴가를 잡아두고 찾아와 공연을 참관하고 돌아가는 애호가가 적지 않다. 꼭 이런 관객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폐막공연까지 저녁 8시에 치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폐막공연만이라도 좀 앞당긴 시각에 치르는 운영상의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황진규 음악평론가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제는 ‘루트비히’였다. 독일어권에서는 꽤 흔한 이름이지만, 음악사에서 이 이름이 나올 경우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가리킨다고 봐도 좋다. 과연 올해 음악제에서는 베토벤의 작품이 유독 큰 비중을 차지했고,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하는 등 돋보이는 시도가 많았다. 내가 참관한 폐막 공연 역시 베토벤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전반부 순서는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일명 ‘황제 협주곡’이 차지했다. 독주를 맡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는 이번 음악제에서 앞서 몇 차례 공연을 가진 바 있다. 1967년생이니 이제 노장 대접을 받을 나이지만, 그는 강건하면서도 꼼꼼한 타건으로 매우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일부 서정적인 악구에서 템포를 좀 느리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공연장인 뮤직 텐트의 풍부한 잔향을 감안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앙코르로 연주한 베토벤의 바가텔에서는 은은하고 시적인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반주는 생생하고 대비가 뚜렷했으며, 끝까지 독주자를 잘 뒷받침했다. 다만 1악장의 일부 포르티시모 총주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맞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는 전적으로 무난했으나 일부 대목에서는 목관이 현에 묻히는 경향이 있어 아쉬웠다.
이승원은 한국인 최초로 2024년 덴마크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휘자이다. 전반부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그는 2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을 지휘했다. ‘영웅 교향곡’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곡은 많은 전문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는 작품이다. 교향곡의 역사를 뒤바꾸고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연 작품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승원은 1악장부터 셈여림과 템포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강한 극적 효과를 추구했다. 1악장과 3악장은 비교적 경쾌하게 진행됐으며, 특히 3악장 스케르초는 속도감 있고 활기찬 연주였다. 청량감 있는 호른 합주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짝수 악장에서는 이러한 극적 효과가 다소 신파적인 수준에 가까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모든 세부를 강조하려는 지휘자의 노력 때문에 전체적인 짜임새가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었고, 저음 현을 강조한 밸런스는 이런 경향을 한층 두드러지게 했다. 2악장은 악장 자체가 장송행진곡인 만큼 이런 무거움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4악장은 각 세부가 질서정연하게 맞물린 연주였음에도 전체적으로 힘이 너무 들어가 상쾌한 느낌이 부족해 아쉬웠다. 곡의 기념비적인 웅장함을 부각하는 게 지휘자의 목표였다면, 그 점에 한해서는 차고 넘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중은 지휘자의 노력에 열화 같은 박수로 화답해주었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자 공연에서 받은 인상을 반추하기보다는 서둘러 공연장을 떠나기에 바빴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타지에서 며칠 일정으로 휴가를 잡아두고 찾아와 공연을 참관하고 돌아가는 애호가가 적지 않다. 꼭 이런 관객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폐막공연까지 저녁 8시에 치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폐막공연만이라도 좀 앞당긴 시각에 치르는 운영상의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황진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