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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하나요?”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로 현 국가기록관리 제도의 틀을 만든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가 ‘어떻게 기록해야 하느냐’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전작 <거인의 노트>를 통해 ‘기록’이 가진 힘을 소개했던 그가 이번에 ‘생각’이라는 주제를 다룬 <마인드 박스>를 펴낸 이유다.

그는 “주변을 보면 타인에게 휘둘리며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며 “그 이유는 생각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자기가 있는 삶을 살려면 궁극적으로 생각의 힘, 즉 생각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생각에 관한 격언들이 있다. ‘틀 밖에서 생각하라’, ‘생각의 틀을 깨라’ 같은 것들이다. 생각을 가둬놓지 않아야 새로운 생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오히려 생각의 틀이 생각을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생각은 액체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생각은 바다처럼 넘실댄다. 파도가 치기도 한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의 바다는 무질서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면 바다는 순간 잠잠해지면서 바닷길이 쫙 열린다.

저자의 팁은 미리 생각의 틀을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다. 그 틀이란 바로 ‘생각의 상자(마인드 박스)’다. “선택의 갈림길을 맞닥뜨릴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의 틀을 만들어 놓고 삶에 활용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쓸 수 있도록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는데 이것이 마인드 박스”다.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의 생각 정리법… “잘 정리해 상자에 넣어두세요” [서평]
김 교수는 자신의 마인드 박스 16개를 소개한다. 욕망, 경쟁, 소비, 잠재성, 꿈과 돈, 시간, 일, 주체성, 실리와 명분, 육체와 정신, 가족, 이타성 등의 이름을 상자에 붙여 놨다.

그가 교수가 된 것은 어머니의 바람이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마침내 교수가 돼 어머니의 바람을 이뤄드린 후 선언했다. “이제부터 나에게 어떤 바람도 품지 마시라. 지금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겠다.” 물론 교수 생활도 큰 의미가 있었다. 한국에서 기록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제자들을 길러낸 일은 보람찼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그러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왔다. 학생이 아닌 일반 대중을 가르친 건 처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만, 가르쳐서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때부터 그는 교수가 아니라 대중 교육자를 꿈꾸게 됐다. 그 생각이 ‘욕망’이라 이름 붙은 그의 마인드 박스에 들어 있다.

마인드 박스를 머릿속에만 두어선 안 된다. 생각과 기억은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기록학자답게 그는 마인드 박스의 내용을 글로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노트에 키워드, 키워드에 관련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 인생관 등을 정리해 적는 방식이다. 그는 이를 “액체 상태의 생각을 고체로 만든다”고 표현한다.

물론 유연한 생각, 열린 생각은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자신만의 기준과 철학이 없으면 주변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좌고우면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된다. 이 기록학자의 생각 정리법은 하나의 해법이 될 만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