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ㅈ'으로 시작하는 7대 대화 금지어
동네방네 자랑질을 일삼는 사람을 ‘덜 떨어졌다’고 해서 팔불출(八不出)이라고 한다. 그 첫째는 물론 제 자랑이고 두 번째가 자식 자랑이다. 과도한 자식 얘기는 으레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부모는 자식 자랑하지 말고, 자식은 부모 흉보지 말라”고 했다.

대화 중 피해야 할 화젯거리로 자식처럼 ‘ㅈ’으로 시작하는 두 음절 단어가 많다. 우선 ‘집안’이 있다. 우리 조상이 어떻고, 형제가 어떻고, 시댁·처가가 어떻고 하는 얘기다. 집안보다 더 광범위한 인맥이 ‘지인’이다. “내가 누굴 잘 아는데…” 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런 꼴불견의 특징은 자존심만 높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들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불안한 마음에 왜곡된 자기 포장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초면에 사는 곳부터 묻는 사람도 있다. 이어 아파트 평수, 자가인지 전·월세인지 파악하면서 대화를 ‘재산’ 얘기로 몰고 가려는 부류다. 고향을 확인하면서 ‘지역’ 갈라치기에 나서는 사람들도 기피 대상이다. ‘종교’ 역시 조심스러운 대화 항목이다. 자칫 세계관의 차이로 큰 싸움이 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여섯 가지보다 가장 위험한 대화 주제는 ‘정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신념이라는 절대 선(善)을 건드려 불구대천 원수가 될 수 있는 게 정치 얘기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58%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지인이더라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술자리를 할 수 없다는 응답도 33%나 됐다. 술집에서 정치 얘기로 얼마나 쌈박질을 해댔으면 벽에 ‘종교 이야기하지 마라. 정치 이야기하지 마라’고 써 붙였을까.

사회의 분열·갈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해결 지향점으로 쓰는 표현이 통합(統合)이다. 그러나 통합은 이상적일 뿐, 현실적으론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분위기만 형성돼도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정치는 양극화의 주범이자 그 격차를 좁힐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양극화를 자양분으로 삼는 양극화 향유 집단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