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아프니까 노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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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중년도 아프고, 노년은 더 아프다. 청춘은 마음만 아프지만, 노년은 몸도 많이 아프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도 생기가 돌고 희망이 떠오르지만, 노년은 그 이름만으로도 풀이 죽고 절망이 떠오른다. 청춘만 외로운 줄 알지만, 노년은 더 춥고 외롭다. 청춘은 젊음이라는 싱싱함이 있지만, 노년은 노화라는 사그라짐이 있다. 청춘은 세상을 향해 큰소리 칠 수 있지만, 세상은 노년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속칭 ‘꼰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는 특히 더 아프다. 한국전쟁 폐허 속에 태어나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버티며 살아냈고,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 뒷바라지로 풀며 한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휴일이라는 것도 없었고, 휴가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세대였다. 누군들 멋진 노후를 준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해야하고 자식들 공부시켜야하니 언제 자신을 돌볼 시간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자식한테 버림받는 첫 번째 세대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나이 먹어 근력이 떨어지고 주된 일자리에서도 밀려났다는 이유로 세상은 베이비부머를 헌신짝 취급하려 한다.
대한민국은 제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의 후진국에서 70~80년대의 경제성장을 통해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중진국 수준까지 올라섰다. 선진국 모임인 OECD에도 가입하고, G7이나 G10 회의에도 참석할 정도의 국력이 되었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문화발전의 기틀을 지금 퇴물 취급을 받는 베이비부머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 베이비부머가 이제 대거 회사를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100세 시대에 아직도 몸과 마음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데, 강제로 떠밀려 퇴직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할 일이 없고, 갈 곳도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는 3무(三無)의 삶은 아픈 노년이다. 그러니 청춘만 아프다고 위로하지 말고, 노년은 더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노년기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노년이 얼마나 아픈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년기 자살은 퇴직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의 상실, 배우자의 사망, 건강악화, 만성질환, 신체적 · 정신적 장애, 사회적 고립, 재정적 어려움, 가족불화에 따른 절망감, 상실감, 무력감, 우울감을 느끼며 발생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사회적 ·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인자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말로는 국가와 사회가 노인을 배려하고, 노인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일랜드의 시인 W.B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도 직역하면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된다. 그 속뜻은 ‘세상이 많이 바뀌고 험악해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게 변했거나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이 살아갈 만한 나라가 아니다'가 되겠지만…
그러니 아프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살펴야 한다. 돈벌이든, 취미활동이든, 봉사활등이든, 무엇이든 움직일 수 있는 일거리를 스스로 찾아내면 할 일이 생긴다. 여행이든, 등산이든, 운동이든, 할 일을 찾아내면 갈 곳이 생긴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호회든, 누군가를 찾아내면 만날 사람이 생긴다. 이렇게 할 일, 갈 곳, 만날 사람이 있는 노년은 조금 덜 아프다. 아픈 노년을 스스로 다독여보자.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속칭 ‘꼰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는 특히 더 아프다. 한국전쟁 폐허 속에 태어나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버티며 살아냈고,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 뒷바라지로 풀며 한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휴일이라는 것도 없었고, 휴가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세대였다. 누군들 멋진 노후를 준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해야하고 자식들 공부시켜야하니 언제 자신을 돌볼 시간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자식한테 버림받는 첫 번째 세대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나이 먹어 근력이 떨어지고 주된 일자리에서도 밀려났다는 이유로 세상은 베이비부머를 헌신짝 취급하려 한다.
대한민국은 제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의 후진국에서 70~80년대의 경제성장을 통해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중진국 수준까지 올라섰다. 선진국 모임인 OECD에도 가입하고, G7이나 G10 회의에도 참석할 정도의 국력이 되었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문화발전의 기틀을 지금 퇴물 취급을 받는 베이비부머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 베이비부머가 이제 대거 회사를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100세 시대에 아직도 몸과 마음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데, 강제로 떠밀려 퇴직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할 일이 없고, 갈 곳도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는 3무(三無)의 삶은 아픈 노년이다. 그러니 청춘만 아프다고 위로하지 말고, 노년은 더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노년기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노년이 얼마나 아픈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년기 자살은 퇴직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의 상실, 배우자의 사망, 건강악화, 만성질환, 신체적 · 정신적 장애, 사회적 고립, 재정적 어려움, 가족불화에 따른 절망감, 상실감, 무력감, 우울감을 느끼며 발생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사회적 ·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인자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말로는 국가와 사회가 노인을 배려하고, 노인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일랜드의 시인 W.B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도 직역하면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된다. 그 속뜻은 ‘세상이 많이 바뀌고 험악해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게 변했거나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이 살아갈 만한 나라가 아니다'가 되겠지만…
그러니 아프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살펴야 한다. 돈벌이든, 취미활동이든, 봉사활등이든, 무엇이든 움직일 수 있는 일거리를 스스로 찾아내면 할 일이 생긴다. 여행이든, 등산이든, 운동이든, 할 일을 찾아내면 갈 곳이 생긴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호회든, 누군가를 찾아내면 만날 사람이 생긴다. 이렇게 할 일, 갈 곳, 만날 사람이 있는 노년은 조금 덜 아프다. 아픈 노년을 스스로 다독여보자.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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