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누구일까. 케루비노가 많은 지지를 받는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시동(侍童). 사전적으로는 ‘귀인(貴人) 밑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말한다. 케루비노는 문제적 인물이다. 사춘기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고 있어 정신과 육체가 혼란하다. 무엇보다 모든 여성이 다 신비롭고 욕망의 대상이다.

“내가 누군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때론 불타오르고, 어느 땐 차가워지죠. 모든 여자가 색깔이 제각각 다르잖아요. 사랑, 쾌락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요. 설명 불가능한 욕망이 꿈틀대요. 자면서도 깨어서도 사랑을 말하죠. 물⸱그림자⸱산⸱꽃⸱분수⸱메아리⸱바람, 모든 게 날 유혹해요. 내 얘길 들어주는 이가 없으면 혼자서도 사랑을 말해요.” 이런 상태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1막의 한 장면을 수채화로 그린 그림. 그림에서 의자 뒤에 숨은 캐릭터가 바로 '케루비노'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1막의 한 장면을 수채화로 그린 그림. 그림에서 의자 뒤에 숨은 캐릭터가 바로 '케루비노'다.
케루비노(Cherubino)라는 이 미소년 이름에 주목하고 싶다. 수많은 오페라 중에서도 유일하다 할 만큼 희소하기 때문. 케루빔(Cherubim)과 세라핌(Seraphim)에 대해 들어봤는가? 그렇다. 천사의 이름. 천사는 이른바 '구품천사론'이라고 해서 세 단계, 9등급이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상품(上品)에 치품(熾品)천사인 세라핌과 지품(智品) 천사인 케루빔이 자리한다. 세라핌(사랍/스랍)은 치열하다(熾烈-) 할 때, 앞 글자 치(熾)에서 무슨 역할인지 짐작 가능하다. 신의 사랑, 신의 열기, 독실함, 은총의 불꽃을 나타낸다. 즉, 신께 가장 치열하게 충직한 천사다.

케루빔(거룹/그룹)은 성화(聖画)를 보면, 보통 아기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케루비노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가장 나이 어린 배역이며 순진무구하다는 점과 상통한다. 지품(智品) 천사이기에 비록 좌충우돌하지만, 꾀가 많고 지혜롭다. 또한 모든 천사는 중성(中性)이라는 사실. 케루비노는 카스트라토(Castrato,거세가수)의 맞춤형 배역이었다. 오늘날에는 그래서,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가 남장하고 노래한다. 극 중에서는 백작 부인⸱수잔나와 함께 여성 편에서 연대해 남성 기득권 세력의 상징인 백작을 골탕 먹이는 일에 일조한다.
조반니 벨리니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 유아>. 이 작품 뒤에 그려진 천사들이 바로 케루빔이다. 성화(聖画)에서 케루빔은 아기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반니 벨리니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 유아>. 이 작품 뒤에 그려진 천사들이 바로 케루빔이다. 성화(聖画)에서 케루빔은 아기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종합하면 어떻게 되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 이름이 맞는다. 케루비노는 바로 모차르트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하늘이 내린 신동인데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슬기롭기 그지없으나 강고한 지배층에 좌절하기 일쑤고, 그러므로 소위 ‘세련된 평민’들과 함께 늘 반란을 꿈꾸는 풍운아.

혹자는 케루비노의 혼돈과 방황을 ‘피가로의 결혼’이 만들어진 해 1786년에서 찾는다. 프랑스 혁명을 3년 앞두고 세상에 나온 점에 주목해 당시 격동에 휩싸인 사회 현상을 은유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즉 구체제인 절대 군주 시대에 반대하며 낡고 무능한 권력을 뒤엎어 버리겠다는 신념. 이같은 변화의 파고 속에서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품는 민중을 케루비노라는 인물이 체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모차르트가 절대 간단치 않은 인물일진대 이같은 확장성 유비(類比)는 대단히 설득적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케루비노는 2막에서 백작 부인과 수잔나에게 천진하게 호소한다.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

“사랑이 뭔지 아시잖아요/내 가슴 속 사랑이 보이시나요?/사랑은 너무나 새로워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욕망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때로는 기쁨, 때로는 고통이더군요/ 영혼이 온통 얼어붙었다가 다시 타오르기를 반복합니다/그래서 바깥에서 행복을 찾아보기도 해요/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축복을 바라기도 하죠/아, 한숨짓고 딱히 원하는 바도 없이 신음해요/까닭 없이 가슴이 뛰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어요/밤낮으로 마음이 편치 못해요/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번민의 순간을 또한 기다린답니다."

벨기에 브뤼셀 태생의 소프라노 쉬잔 당코(Suzanne Danco, 1911~2000)가 잘 불렀다. 1955년 거장 에리히 클라이버의 명반에 등장한다. 이 노래는 기교 없이 깨끗하게 소년처럼 불러야 제맛일 터. 당코는 제대로 부응한다. 노래 자체를 떼어놓고 연주력으로만 볼 때는 불세출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 1966~,伊)를 이기긴 힘들다.

[소프라노 쉬잔 당코의 노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노래]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