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 올림픽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센 강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명소 곳곳을 무대로 사용하며 공연이 펼쳐졌다. 역대 최초 수상 개막식으로 ‘파격적이다.’, ‘어수선하다.’ 등 평이 엇갈렸지만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오페라 가수, 록 밴드, 관현악단 합창단, 팝스타 등 전 예술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4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평소 경험하기 힘든 혁신적인 경험이었다.

지난 7월 초 다녀온 파리 출장에서 나는 도시 전체가 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센 강변에 관중을 위한 좌석이 설치되고 있었고, 에펠탑 아래는 비치발리볼 경기장이 완성됐다. 전 도시가 내가 알던 파리와는 다른 ‘다소 깔끔하게’ 정돈을 마친 상태였다. 그 어느 때보다 영문 표지판으로 주요 행사장을 알리는 안내문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주요 관광지에서 경찰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극성이던 소매치기나 길거리 강제로 호객하는 잡상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시장의 기회도 생기는 법이다.
비치 발리볼 경기장으로 변신한 에펠탑 앞 샹 드 마르스. 출처=올림픽위원회 공식 웹사이트
비치 발리볼 경기장으로 변신한 에펠탑 앞 샹 드 마르스. 출처=올림픽위원회 공식 웹사이트
스타트업에도 마찬가지다. 파리 올림픽은 프랑스의 창업 기업에는 전례 없는 비즈니스 기회가 됐다. 전 세계 200개국에서 약 16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규모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술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특히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술 기업이라면 열심히 ‘노를 저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통적으로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소극적인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파트너십은 코카콜라, 딜로이트, 비자와 같은 대기업과 체결한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결정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한 스타트업이 이 거대한 진입 장벽을 뚫고 IOC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실내 운동을 위한 가상 환경을 제공하는 플랫폼 키노맵(Kinomap)이 그 주인공이다. 키노맵은 전 세계의 달리기, 사이클, 조정 선수에게 키노맵 앱을 통해 파리 올림픽 코스를 그대로 가상 환경으로 제공해 사전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미 파리로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다음부터 발 빠르게 움직여 2020년부터 이 서비스를 차근차근 발전시켜 왔다.

이는 단순히 선수들을 위한 앱만은 아니다. 올림픽 팬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홈 트레이닝 머신 등 피트니스 장비를 통해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경험하는 공간을 그대로 체험해 볼 수 있다. 땅의 저항이나 경사도 등도 앱을 통해 자동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최대한 현실과 유사한 조건에서 트레이닝할 수 있다.
키노맵을 이용한 가상현실 스포츠 트레이닝 출처=올림픽위원회 공식 웹사이트
키노맵을 이용한 가상현실 스포츠 트레이닝 출처=올림픽위원회 공식 웹사이트
키노맵 측은 IOC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향후 7개월 동안 최대 100만 명의 신규 사용자 계정을 생성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연간 평균 40만 명의 신규 사용자를 만들어 내는 것과 비교한다면 매우 큰 수치다.

IOC와 직접 계약을 따내는 것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키노맵은 스타트업 중 거의 유일한 수혜자가 됐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 산하의 올림픽 조직위원회인 ‘파리 2024’와 협력은 스타트업이 도전해 볼 만한 난이도이다.

‘파리 2024’는 프랑스 중앙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민간기업으로 약 50억 유로 규모의 공공 계약을 관리한다. 이 중 일부를 전국의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에 할당하겠다고 약속했다. 올 초까지 약 1200개의 계약이 공개 입찰을 통해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통해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 스포츠 스타트업인 스포츠 히어로즈(Sport Heroes)는 ‘파리 2024’와 계약을 체결한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다. 스포츠 히어로즈는 파리 2024를 통해서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마라톤 파리 2024(Marathon Pour Tous Paris 2024)’ 앱을 제공하게 됐다. 일반인들이 파리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챌린지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앱이다.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된 구글 플레이 스토어 누적 다운로드 수만을 봤을 때 스포츠 히어로즈가 올림픽을 통해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준 것 같지는 않다. 약 5만 회의 다운로드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IOC의 공식 파트너와는 달리, 올림픽 서비스 제공업체로서 공개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영리하게 이를 홍보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스타트업의 역량에 맡겨져 있다. 아직 80명 정도의 작은 회사인 스포츠 히어로즈는 무료 사용자를 모으는 마라톤 앱보다는 B2B 사업의 근간인 기업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유나이티드 히어로(United Herose)’에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모두를 위한 마라톤 파리 2024 앱 화면. 출처=구글 플레이스토어
모두를 위한 마라톤 파리 2024 앱 화면. 출처=구글 플레이스토어
좀 더 영리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올림픽 파트너십을 따낸 대기업과 협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올림픽의 수혜를 입고 있다. 파리 기반 수하물 물류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올더웨이(Alltheway)는 파리 공항 운영사 그룹 ADP와 공공 교통 회사 RATP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올더웨이의 에밀리 가조(Emilie Gazeau)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인 시프티드의 인터뷰에서 "시장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기에 어려운 조직구조를 가진 대기업의 특성상, 이런 큰 행사 때 조력자를 대기업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무거운 수화물을 들고 집에서 공항까지 와서 수화물을 부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한참 만에 나오는 짐을 찾아 다시 여행지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은 비행기로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올더웨이는 이 점에 착안해 파리 지역에서 집 근처 편한 위치에서 수화물을 부치고 편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와 파리에 도착한 여행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바로 숙소로 가볍게 이동해 숙소에서 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은 이미 유럽 허브공항 중 하나로 연간 6500만 명이 넘는 이용객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내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파리 오를리 공항까지 감안한다면, 파리 내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올더웨이는 올림픽이 열리는 2024년 7월~ 8월에 사용량이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더웨이의 비행기 수화물 배송 서비스. 출처=올더웨이 홈페이지
올더웨이의 비행기 수화물 배송 서비스. 출처=올더웨이 홈페이지
숙소 호스트를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호스트앤플라이(HostnFly)는 에어비앤비, 부킹닷컴과 같은 숙박 제공업체와 협력해 올림픽 기간 서비스를 확장할 예정이다. 이미 파리의 숙소 임대를 제공하는 호스트의 약 15%를 관리하고 있을 만큼 시장 점유율이 높고, 호스트를 대신하여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청소 전문가 배치 등을 담당한다. 호스트앤플라이는 올림픽으로 인해 회사의 매출이 최대 800만 유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2024년 전체 매출의 약 15-20%에 해당한다.

올림픽이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행사이니만큼 보안 분야 또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의 카메라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군중 밀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감지, 화재 발생과 같은 특정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유독 까다로운 유럽의 경우 스타트업 입장에서 시장에 도입하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통과된 새로운 법률에 따라 올림픽 기간 동안 이 기술의 실험적 사용이 허용됐다.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제공할 세 개의 프랑스 기업인 윈틱스(Wintics), 비데틱스(Videtics), 챕스비전(ChapsVision)을 선정했다. 모두 AI 기반 비디오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이다. 윈틱스와 비데틱스는 스타트업, 챕스 비전은.다양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중견기업이다.

이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올림픽 무대에 진출해 협력 기회를 얻게 됐을까? 바로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다. 2023년 여름 프랑스 정부는 ‘프렌치 트래블 테크(French Travel Tech)’ 프로그램을 시작해 여행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비즈니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앞서 소개한 호스트앤플라이와 올더웨이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대기업 고위 경영진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보안 분야 스타트업들도 평소라면 규제 때문에 참여하기 힘들었을 영역에서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기간 동안 그들의 솔루션을 검증해 볼 기회를 얻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행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스타트업이 기술과 혁신을 통해 기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이자 쇼케이스 무대를 제공한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앞으로 열릴 다양한 국제 스포츠 행사와 국제 행사들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스타트업을 위한 금쪽 같은 기회, 2024 파리 올림픽[긱스]
이은서 123 팩토리 대표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123 팩토리의 대표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스타트업, 글로벌 기업, 투자자, 엑셀러레이터, 인큐베이터, 글로벌기업, 정부 기관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