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만화가 '계급장' 떼고 웹툰 도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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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주년 허영만 작가
“허영만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다른 이름으로 연재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동안 계속해온 종이 만화가 아니라 웹툰으로요.”
원로 만화가 허영만(77·사진)이 각시탈을 쓴다. 가면을 쓴 주인공이 일본 순사들을 때려잡는 그의 1974년 작 <각시탈> 얘기가 아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노(老)작가 본인이 정체를 감추고 남몰래 도전하겠다는 얘기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그는 “이미 3~4개월치 원고를 준비했다”며 “나의 방식이 웹툰 플랫폼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허영만 작가의 반세기 만화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전시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가 6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10년대 후반 <만화 일기>까지 원화와 드로잉, 취재 자료 등 2만여 점을 선보인다. 전남 여수에서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지역 작가의 화업을 기념하는 취지다.
중장년층이라면 그의 만화가 실린 손때 묻은 어린이 잡지를 기억할 것이다. 질풍노도의 X세대를 포착한 <비트>, 1990년대생의 안방극장을 책임진 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가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타짜> <식객> 등 대표작들은 종이를 넘어 영화와 드라마로 영역을 넓히며 재탄생했다.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비결로는 평범함을 꼽았다. “제 작품에는 ‘슈퍼스타’가 없어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독자분들이 편하게 다가와 주신 것 같습니다.”
늘 만화계의 정상을 지켜왔지만, 그는 ‘만년 2위’라며 자신을 낮췄다. “이전에는 이상무 선생이 1등이었고, 그다음 이현세 선생이 나타났어요. 오래 하다 보니까 저만 남은 것 같아요.”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비법은 무엇일까. 끝없는 소재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밥을 먹다가 휴지에 고추장을 묻혀서 아이디어를 메모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꼼꼼한 취재도 빼놓을 수 없다. <식객>을 연재하기 전 자료조사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월 6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원고료를 받았지만, 취재 경비로 금세 바닥났다. 오히려 이전까지 모아둔 목돈이 반년 만에 동났을 정도였다.
요즘도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작업실로 향한다는 그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은 ‘나는 책상 위에서 글을 쓰다가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 싶어요. 웹툰 작가들이 ‘종이 만화 그리던 허영만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 여수에 허영만 만화기념관이 개관한다.
광양=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원로 만화가 허영만(77·사진)이 각시탈을 쓴다. 가면을 쓴 주인공이 일본 순사들을 때려잡는 그의 1974년 작 <각시탈> 얘기가 아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노(老)작가 본인이 정체를 감추고 남몰래 도전하겠다는 얘기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그는 “이미 3~4개월치 원고를 준비했다”며 “나의 방식이 웹툰 플랫폼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허영만 작가의 반세기 만화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전시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가 6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10년대 후반 <만화 일기>까지 원화와 드로잉, 취재 자료 등 2만여 점을 선보인다. 전남 여수에서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지역 작가의 화업을 기념하는 취지다.
중장년층이라면 그의 만화가 실린 손때 묻은 어린이 잡지를 기억할 것이다. 질풍노도의 X세대를 포착한 <비트>, 1990년대생의 안방극장을 책임진 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가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타짜> <식객> 등 대표작들은 종이를 넘어 영화와 드라마로 영역을 넓히며 재탄생했다.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비결로는 평범함을 꼽았다. “제 작품에는 ‘슈퍼스타’가 없어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독자분들이 편하게 다가와 주신 것 같습니다.”
늘 만화계의 정상을 지켜왔지만, 그는 ‘만년 2위’라며 자신을 낮췄다. “이전에는 이상무 선생이 1등이었고, 그다음 이현세 선생이 나타났어요. 오래 하다 보니까 저만 남은 것 같아요.”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비법은 무엇일까. 끝없는 소재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밥을 먹다가 휴지에 고추장을 묻혀서 아이디어를 메모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꼼꼼한 취재도 빼놓을 수 없다. <식객>을 연재하기 전 자료조사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월 6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원고료를 받았지만, 취재 경비로 금세 바닥났다. 오히려 이전까지 모아둔 목돈이 반년 만에 동났을 정도였다.
요즘도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작업실로 향한다는 그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은 ‘나는 책상 위에서 글을 쓰다가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 싶어요. 웹툰 작가들이 ‘종이 만화 그리던 허영만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 여수에 허영만 만화기념관이 개관한다.
광양=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