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좋게 말해 '불도저'다. 원하는 건 반드시 얻어낸다. 국회의원도 해낸 것처럼."(기획재정부 A 과장)

지난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동구남구을에 출마해 당선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에 대한 기재부 직원들의 평가다. 안 의원은 1989년 제3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예산실 요직을 두루 거친 '예산통'이다. 복지예산과장(2008년), 행정예산심의관(2014년), 복지예산심의관(2016년), 경제예산심의관(2017년), 예산총괄심의관(2019년) 등을 거쳐 2020년 예산실장을, 이듬해 제2차관을 각각 역임했다.

관록의 관료 출신인 그는 요즘 '정치 신인'으로서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전 국민 25만원 지원' 등 굵직한 경제 이슈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의원을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었다. 그는 '친정'인 기재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활동을 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안=정치 신인이자 '국회의원'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이었다. 민주당의 '경제정책통'으로서 국회에서 경제 문제를 짚고, 이를 입법이나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자는 목표다.

"언제까지 낙수효과만 기다릴건가"

▲지난 5일 한국 증시가 대폭락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원인으로 꼽히는데.
안=일단 주식 시장은 과잉 반응한 측면이 있다. 이른바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로 촉발된 패닉 현상이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 본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를 일으킨 지난달 실업률(4.3%)은 사실 절대적으로 보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시장 예상치를 조금 넘을 뿐 주식 시장의 반응처럼 미국 경제가 '급침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경제활동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경 폐쇄 조치가 내려지면서 일시적으로 실업률이 올랐을 뿐이다. 미국의 경제력에 과잉 기대가 다소 빠질 뿐이지, 여전히 미국의 경제잠재력은 전 세계를 이끌 힘이 있다. 그간 누적된 고금리가 내수에 영향을 미칠 때도 됐다.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폴리시믹스(정책 조합)는 무엇인가.
안=내수를 살릴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 놔두면 내수 침체는 고착화된다. 지금의 미국 경제 흐름은 필연적으로 한국 수출의 증가 폭을 둔화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믿을 건 수출뿐인데, 수출이 하반기에도 잘 돼 내수를 살리는 '낙수효과'가 약해질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골이 깊다. 언제까지 수출의 낙수효과만 기다리고 있을 건가. 수출과 내수의 연결성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경기 진단도 새로 해야 한다. 정부는 내수가 회복되리라 보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는데, 실제는 이를 밑돌 가능성이 있다.

▲"돈을 풀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안=동감한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가만히 앉아서 수출 낙수효과만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안이한 경기 인식과 대응으로 보인다. 이번 주식폭락 사태를 계기로 다시 되짚어봐야 한다.

세계 경제 둔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정한 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 버블(거품)'이 빠지고 연착륙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방식을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경기 방어적'인 재정 정책을 운용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작년엔 56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마저 발생했다. 한국은 재정건전성을 담보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가 좋으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초과 세수가 생기고, 반대로 경제가 고꾸라지면 그 폭을 넘어설 정도로 세금이 덜 걷히는 나라다.

▲민주당이 내수 부양을 명분으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추진하는데. 정부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안=내수 침체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어렵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이분들이 자녀에게 남은 재산을 물려주고 곧장 기초생활 수급자로 내려올 수도 있다. 이러면 오히려 복지비가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한번 수급자가 되면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25만원 지원'은 서민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자영업을 지키자는 의미가 크다. 다만 현금을 그대로 줄 수는 없는 거고, 지역화폐를 줘서 간접적인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 마중물을 통해 내수가 살아날 수 있는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금액 규모나 지급 대상은 여야 간 합의를 해서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하면 될 일이지, 무턱대고 가타부타 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방치할지, 국가가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 구간을 넘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재정적 부담도 크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차라리 자영업자에게 배달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간접 지원하면 안되나.

안=그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매출과 소득을 늘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한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여당이 소상공인 대책을 내놓으면서 "배달료 지원을 검토해보자"고 했다. 다시 말해 "지원하더라도 내년 예산에서 하자"는 의미인데, 시급한 문제라면 지금 당장 해야지, 왜 나중으로 미루는지 모르겠다. 소상공인들은 다 넘어갈 판이다. 지금 우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내년 예산에서 빼면 된다. 이건 전적으로 정부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면 당장 무얼 할 수 있을지 내놔야 한다.

"정부가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도 뼈아프게 고민해야 한다. 사실 정부는 조세지출로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올해 세입예산 기준으로는 25조원 정도다. 그런데 그 소중한 혈세들이 대기업 법인세 경감, 임시투자세액공제 등으로 대기업에 간다. 종합부동산세 혜택도 고액 자산가에게 간다.

정부가 같은 돈으로 내수 진작과 소상공인 지원에 쓸지, 대기업이나 고액 자산가 지원에 활용할지 두 가지를 비교해야 하는 문제다.

오직 '25만원'이라는 숫자만 보고 "현금 살포한다"거나 "빚잔치하면서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식으로 보면 안 된다. 정부가 국민 중 서민층의 어려움을 보고 방책을 강구하려 하느냐 아니면 이를 모른체하고 고소득자의 민원 해결하는 데 집중하느냐, 이런 정책 우선 순위에 대해 정부가 이미 선택을 내린 것 같다. 그게 지금 경제 상황에서 과연 올바르냐는 의문이 든다.

"소액주주 이해 반영 안되는데, 세제 인센티브 무슨 소용있나"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경의 상시화'라는 비판이 뒤따랐는데.
안=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된 점이 다소 유감스럽다. 내 취지는 재정정책의 기동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양극화고, 그 이유는 기술 산업 이 구조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바로 치유를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특정 부문의 경제 충격에 대해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금리나 통화량 조절은 국가 경제 전체를 상대로 한 정책인 만큼 손이 너무 크다.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다. 미국의 금리정책도 봐가면서 해야 한다. 그래서 재정정책의 유효성이 중요하다.

문제는 지금 추경의 손발이 너무 묶여있다는 점이다. 경기침체(두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와 대량실업 시에만 가능하다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워낙 기술 변화가 빠르고 부침이 심하니까 특정 분야에서 발생한 충격이 그 동네로 확산해나가는 것이다. 금융도 한 부분이 무너지면 전체로 확산하니 리스크를 조기에 차단해야 하고, 발빠르게 움직어야 한다.

▲솔직히 기재부에 힘을 실어준다는 느낌도 든다.
인=맞다(웃음).

▲종합부동산세나 금융투자소득세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 말이 많은데.
안=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면 당론이 정해질 것이다. 지금 다양한 시각이 나오는 건 좋다고 본다. 종부세는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빠졌는데, 잘못 건드리면 집값 불쏘시개 될 것이란 우려도 고려했던 것 같다.

▲상속세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최근 정부가 2024년 세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최대 주주 할증 과세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괄공제나 배우자공제 대신 자녀 공제 금액을 확대했는데.
안=일단 상위 중산층의 세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상속재산의 약 80%가 부동산인 것 같은데, 부동산 가격이 최근에 오르면서 과세 대상자도 5년간 두 배 정도로 늘었다. 이들에 대한 세 부담이 얼마가 적정한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단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녀 세액 공제를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높인 것은 과세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자녀 숫자에 따라 금액 한도가 너무 커진다. 아무리 저출산을 염두에 뒀다고 하지만, 상속세는 몇십년 뒤에 벌어질 일인데 자녀 공제세액을 기준으로 자녀를 얼마나 낳을지 의사 결정할 일은 없다. 세제 혜택은 가능하면 많은 분이 받아야 하고, 그 혜택이 균형적이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배우자 공제나 일괄공제 금액을 조정하는 것이 맞다. 특히 배우자 공제는 이중과세 문제도 걸려있지 않나. 남편(아내)이 사망할 때 한번 세금을 내고, 본인이 사망할 때 다시 한번 세금이 부과되니까. 이런 부분을 손보는 게 더 시급하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나.
안=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부터 짚어봐야 한다. 상장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제도를 고치는 게 우선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풀지 않고, 주변적인 이슈인 '세제 인센티브'만 건드리고 있다. 근본 대책이 먼저고, 세제는 이후 보완적인 수단이다.

▲'주주 충실의무'를 담는 상법 개정을 전제로 말하는 건가.
안=꼭 전제로 한다기보단, 근본 대책이 먼저 필요하다는 얘기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내려봤자 기업 입장에선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의사 결정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투자에 걸림돌인 걸 제대로 바꿔야 효과가 나온다.

밸류업 기업 투자자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도 대주주나 기업 오너들은 배제하는 것이 맞다. 그분들은 충분한 담세 능력이 있다. 예를 들면 장기 보유 주식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주주가 도움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 "이거 하나만큼은 통과시키겠다"는 정책이 있다면.
안=1호 법안으로 내놓은 '국토 대개조법'이다.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초광역 경제권을 지방에 만들어야 한다. 국가 발전 기조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다. 이미 기득권이 잡힌 산업을 지방으로 내릴 수는 없다. 아직 이해관계가 없는 미래 혁신 산업을 지방으로 줘야 한다. 예를 들어 데이터 처리나 신재생 전환 사업 등이 있다.

단순히 산업만 옮길 것이 아니라 인재들이 가야 한다. 수도권과 해외에 있는 인재들을 지방에 유치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에도 수도권에 상응하는 경제권이 형성되고, 빈혈 상태인 지방에도 활기가 돌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될 수는 없겠지만, 이미 국민적 우려와 문제 인식이 뭉쳐져 가고 있다.

이 일은 중앙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방에 맡겨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뜬다"고 소문나면 여기저기 모두 'AI 특구'를 유치하겠다고 달려들고, 결국 분산 투자가 일어난다. '기회 발전 특구' 등 각종 특구를 지정하면 뭐 하나. 우리나라에 '특구'가 수도 없이 많다. 근데 막상 가보면 텅텅 비어있다. 무엇 하나라도 정부가 제대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산업 정책을 만들어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않으면 망한다.

지역별로 특징과 장단점이 있고 잠재력이 다른 만큼 그에 부합한 뭔가를 키우도록 차별화시켜야 한다. 개인적으로 광주는 신재생에너지, AI, 문화 쪽으로 특화해야 한다고 본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거부권 정국'을 질려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안=세계적으로 신산업을 둘러싼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먹거리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야간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분을 우선적으로 해야한다고 본다. 단 여야간 신뢰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께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줘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해달라"는 식으로 나가면 안된다.

이광식/정상원/강경민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