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선수가 된다는 것은 짐승과 천사의 빼어난 혼혈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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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은아의 탐나는 책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끈이론>
노승영 옮김, 알마, 2019
김예지와 시몬 바일스의 '멋'에는 깊이가 있다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익힌 기예일테니까
운동선수의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끈이론>
노승영 옮김, 알마, 2019
김예지와 시몬 바일스의 '멋'에는 깊이가 있다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익힌 기예일테니까
운동선수의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며칠 전 모두의 타임라인에 검은 야구모자를 돌려쓰고 나타나 세계인의 심장에 총구를 겨눈 그의 경기를 나도 보았다. 짧은 영상 속 그는, 네 살 때 킬러 에이전시에 보내져 총 쏘기로 숨쉬기를, 과녁에서 표정을 배운 본 투 비 저격수 그 자체였다. 타당─. 오른쪽 어깨를 턱밑까지 끌어다 붙인 그가 미동도 동요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 경기장에 울려 퍼진 총성은 짧은 순간 사위를 적막에 빠트릴 만큼 고독하고 냉혹했다.
잠시 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캐스터가 흥분에 휩싸여 “이제 대한민국 김예지가 새로운 세계 신기록 보유자입니다”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그저 다음 격발만이 자신의 관심사라는 듯이, 뒤로 물러나 정면을 주시하더니 고개를 젖히고 깊은 숨을 내쉴 뿐이다. 이 장면을 보고 김예지란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그릇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때려 박은 느낌”, 그를 알려고 스크롤을 내리다 발견한 댓글이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 몇 초로 전 생애를 상상케 하는 이 ‘멋’을 깊이라고 표현했다. “위대한 운동선수들의 동작에는 깊이가 있다. 그들은 ‘힘’과 ‘품위’와 ‘절도’ 같은 추상적 개념이 현실에서 구체화되도록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달 가능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최상급 운동선수가 되어 경기한다는 것은 짐승과 천사의 빼어난 혼혈이 된다는 것이다.”(60)
과연 어떤 선수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보여주는 경기를 펼치는 듯하다. 그들은 강하되 부드럽고, 철저하되 유연하며, 조화롭되 단순하다. 강하면서 딱딱하고, 철저하지만 융통성 없고, 조화로운데 복잡하기―그렇게만 되기도 어려운데……. 그런 기량은 치타의 스퍼트나 날다람쥐의 착지처럼 순전한 본능이든지,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호흡처럼 익혀버린 기예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이 보여주는 온전한 몰입은 ‘자연스럽다 natural’는 것의 감동을 일깨워준다. 나는 요즘 내 몸을 포함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 흐느적거리거나 삐걱대는 걸 보면 시몬 바일스의 경기를 보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 그 몸짓과 동작을 보면서 뼈마디가 시원해지고 속이 정화되는 걸 느끼고 싶다. 지상에서 손발을 뗀 바일스는 공처럼 화살처럼 드릴처럼, 어쩌면 천사처럼 물리법칙을 초월 중이다. 나는 속도며 높이며 각도며 감점할 데가 없다는 해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체조에서 적절하다 빼어나다 아름답다 같은 형용사의 감각을 넓힌다. 의도한 대로 움직여지는 몸을 갖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어쩌면 구체화를 해도 이렇게 하는지, 어떻게 최적의 자세로 눕기도 어려워하는 나한테까지 그런 탄력과 역동을 전달해내는지, “넘버원 손가락[집게손가락]을 치켜들었는데 그야말로 자신이 넘버원이면 어떤 기분”(61)일지…… 그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관객인 우리 또한 무언가에 홀린다.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저 모든 심오함과 친밀해지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우리는 이야기를 원한다. 비천한 뿌리, 궁핍, 조숙함, 굳은 다짐, 낙담, 끈기, 협동심, 희생, 포식자 본능, 진통제, 통증에 대해 듣고 싶다.”(60)
많은 사람이 위대한 선수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인터뷰보다는 자서전 같은 것을, 소감과 포부보다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 길고 너무 진정성 있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쿨하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궁금한 건 바일스가 어떻게 바일스가 되었는가 하는 유의 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밀어닥친 현실에 대항해 유감없이 쏟아낸 반응들, 그 집합체로서 위대한 운동선수의 플레이. <끈이론>은 그런 이야기에 바쳐진 책 같다.
잠시 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캐스터가 흥분에 휩싸여 “이제 대한민국 김예지가 새로운 세계 신기록 보유자입니다”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그저 다음 격발만이 자신의 관심사라는 듯이, 뒤로 물러나 정면을 주시하더니 고개를 젖히고 깊은 숨을 내쉴 뿐이다. 이 장면을 보고 김예지란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그릇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때려 박은 느낌”, 그를 알려고 스크롤을 내리다 발견한 댓글이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 몇 초로 전 생애를 상상케 하는 이 ‘멋’을 깊이라고 표현했다. “위대한 운동선수들의 동작에는 깊이가 있다. 그들은 ‘힘’과 ‘품위’와 ‘절도’ 같은 추상적 개념이 현실에서 구체화되도록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달 가능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최상급 운동선수가 되어 경기한다는 것은 짐승과 천사의 빼어난 혼혈이 된다는 것이다.”(60)
과연 어떤 선수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보여주는 경기를 펼치는 듯하다. 그들은 강하되 부드럽고, 철저하되 유연하며, 조화롭되 단순하다. 강하면서 딱딱하고, 철저하지만 융통성 없고, 조화로운데 복잡하기―그렇게만 되기도 어려운데……. 그런 기량은 치타의 스퍼트나 날다람쥐의 착지처럼 순전한 본능이든지,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호흡처럼 익혀버린 기예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이 보여주는 온전한 몰입은 ‘자연스럽다 natural’는 것의 감동을 일깨워준다. 나는 요즘 내 몸을 포함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 흐느적거리거나 삐걱대는 걸 보면 시몬 바일스의 경기를 보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 그 몸짓과 동작을 보면서 뼈마디가 시원해지고 속이 정화되는 걸 느끼고 싶다. 지상에서 손발을 뗀 바일스는 공처럼 화살처럼 드릴처럼, 어쩌면 천사처럼 물리법칙을 초월 중이다. 나는 속도며 높이며 각도며 감점할 데가 없다는 해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체조에서 적절하다 빼어나다 아름답다 같은 형용사의 감각을 넓힌다. 의도한 대로 움직여지는 몸을 갖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어쩌면 구체화를 해도 이렇게 하는지, 어떻게 최적의 자세로 눕기도 어려워하는 나한테까지 그런 탄력과 역동을 전달해내는지, “넘버원 손가락[집게손가락]을 치켜들었는데 그야말로 자신이 넘버원이면 어떤 기분”(61)일지…… 그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관객인 우리 또한 무언가에 홀린다.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저 모든 심오함과 친밀해지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우리는 이야기를 원한다. 비천한 뿌리, 궁핍, 조숙함, 굳은 다짐, 낙담, 끈기, 협동심, 희생, 포식자 본능, 진통제, 통증에 대해 듣고 싶다.”(60)
많은 사람이 위대한 선수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인터뷰보다는 자서전 같은 것을, 소감과 포부보다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 길고 너무 진정성 있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쿨하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궁금한 건 바일스가 어떻게 바일스가 되었는가 하는 유의 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밀어닥친 현실에 대항해 유감없이 쏟아낸 반응들, 그 집합체로서 위대한 운동선수의 플레이. <끈이론>은 그런 이야기에 바쳐진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