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구 폭증한 日…'필리핀 이모'가 구원투수
필리핀인 에스피 바자오(50)는 15년째 일본 도쿄에서 현지 맞벌이 가구 등과 개인 간 계약을 맺고 가사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시급은 1500엔(약 1만4000원). 필리핀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현재 일하는 집은 아이 둘을 키우는 맞벌이 가정. 바자오에게 가사대행을 맡긴 일본인 워킹맘 사리 오쓰보(53)는 “필리핀인은 일본인 가사관리사 시급(3000엔)의 절반인 데다 영어도 가능해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필리핀인 루데스 먼다클즈(31)는 지난 5월 일본으로 건너와 가사대행 대기업 베어스에 취업했다. 필리핀에서 가사 업무 국가자격증을 따고 베어스 필리핀 법인에서 2개월간 일본어를 배운 그는 일본 본사에서도 가사 실기 등 2주간 연수를 받았다. 그는 일본인과 같은 시급 4500엔(약 4만2000원)을 받는다. 일본에서 가사관리사는 매일 8시간씩 일하는 것이 아니어서 월급은 20만~25만엔 수준이다. 먼다클즈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일본인이 요구하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태별 장단점 달라

맞벌이 가구 폭증한 日…'필리핀 이모'가 구원투수
2017년 일본 국가전략특별구역에서 시작된 ‘영주권 없는 외국인’의 가사대행 서비스가 올해 8년째를 맞았다. 2019년 필리핀인 가사관리사가 1000명을 넘은 뒤 코로나 탓에 주춤했다가 다시 활황세다. 엔데믹 시대 재택근무가 축소되는 한편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다. 일본의 저출생 추세를 멈출 카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일본에서 필리핀인 가사대행은 세 종류로 나뉜다. 개인 간 계약형, 기업이 운영하는 중개사이트를 통한 매칭형, 기업이 직접 고용해 파견하는 형태 등이다. 형태별 장단점은 다르다.

개인 간 계약형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싼 요금이다. 필리핀인 가사관리사의 시급은 1500엔 수준으로, 일본 최저임금(전국 평균 1004엔)보단 비싸지만 일본인 가사관리사의 반값이다. 청소, 빨래, 장보기, 요리, 육아 등 상황에 따라 여러 업무를 맡길 수 있고 입주 서비스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식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딴 인력이 아니기에 사람마다 서비스 품질이 다르다는 것은 단점이다.

기업 파견형은 균질한 고품질 서비스가 장점이다. 일본 가사대행 기업에 고용된 필리핀인은 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8시간에 달하는 가사 업무 교육을 이수한 뒤 국가자격증(NCⅡ)을 딴 사람이다. 일본어 능력(JLPT N4 이상)도 갖췄다. 그만큼 요금이 비싸다. 시급은 4500엔 수준이며, 하루 2~3시간 청소 등 정해진 업무만 한다.

관리사 한때 1000명까지 늘어

맞벌이 가구 폭증한 日…'필리핀 이모'가 구원투수
일본은 2015년까지만 해도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영주권 없는 외국인의 가사대행 서비스를 막고 있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1억총활약’(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이 곳곳에서 활약) 정책의 일환으로 이 규제를 풀었다. 2016년 필리핀 정부와 협정을 맺고 일본 정부가 인정한 중개업체를 통해 인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사업은 2017년 시작됐다. 도쿄도, 오사카부, 가나가와현 등 6개 국가전략특별구역에 한해 필리핀인 가사관리사가 도입됐다. 정부에서 인정받은 업체가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해 이용자에게 파견하는 형태다. 가사대행 업체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 주거를 확보하는 등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는 입주할 수 없고, 일정 금액(월 2만엔)을 내고 임대용 사택에서 출퇴근한다. 베어스, 포핀즈, 파소나 등 6개 가사대행 업체가 뛰어들었다. 당시 필리핀인 가사관리사 요금은 월 2회, 회당 두 시간 기준 1만엔으로 책정됐다. 일본인 가사관리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필리핀인 가사관리사의 월급은 15만~20만엔이었다. 2019년 말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는 1000여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필리핀인 가사관리사가 일본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이 3년으로 제한돼 ‘일본에 일하러 가겠다’는 필리핀인을 점차 찾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가 덮치면서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는 급감했다. 2022년 말엔 45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는 비용 보조 나서

일본 정부는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2020년 필리핀인 가사관리사 거주 가능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린 데 이어 지난해엔 일정 자격을 갖추면 3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최장 8년간 일본에서 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배경은 가사관리사 수요 급증이다. 일본은 1992년 맞벌이 가구가 외벌이 가구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엔 1278만 가구로 늘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가사대행 시장이 2017년 698억엔에서 2025년 최소 20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재택근무 축소에 따른 가사대행 수요 확대로 기업도 다시 필리핀인 인력 확충에 나섰다. 베어스는 현재 300명 수준인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를 올해 45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매칭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업 카지는 요구 조건이 맞지 않아 매칭이 어려울 경우 경쟁 업체에 소개하고 대신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 15개 기업이 참여했으며 3년 내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관건은 가격이다. 일본에서도 아직 가사관리사를 이용하는 가정은 부유층이 대부분이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20~40대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사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가격 등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요금 보조에 나섰다.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중소기업이 직원 복리 후생을 위해 가사대행 지원에 나서면 비용 일부를 보조하는 실증사업을 시작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일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다카하시 유키 일본 가사대행서비스협회 회장은 “가사대행은 여성 활약과 육아 지원 등 경제 기반을 지키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며 “서비스 품질 개선과 직원 지위 향상을 위해 국가자격증 신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