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난민에 연간 4조 쓴 英 국민의 분노
‘우리는 극우(far right)가 아니다. 그저 우파다.’ ‘이민자 숙소에 쓸 돈으로 무주택자를 위한 집부터 지어라.’

영국에서 지난주부터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서 나온 구호다. 지난달 29일 리버풀 인근 사우스포트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촉발된 이번 시위는 곳곳에서 폭력 사태로 번졌다. 배후에 강경 우파가 있다는 설이 돌자 시위대에는 ‘극우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허위 정보를 유포하거나 경찰에게 벽돌을 던지는 등의 폭력 시위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다만 이번 사태에선 ‘가짜뉴스로 인한 해프닝’이나 ‘극우 세력의 준동’ 이상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난민 수용에 하루 100억원

영국은 불법 이민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BBC는 지난해 약 8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난민만 12만 명 넘게 받아들였다. 난민을 호텔에 수용하는 데만 하루에 약 600만파운드(약 105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연 4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정부 내에서도 일찌감치 ‘반(反)이민’ 목소리가 커졌다. 인도계 이민 가정 출신인 수엘라 브래버먼 전 내무장관은 재임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불법 이민자 입국을 ‘허리케인’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판받는 것을 겁내 질서를 잡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보수당과 노동당은 지난달 총선을 치르며 불법 이주민뿐 아니라 합법 이주민 규모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와중에 터진 게 사우스포트 사건이다. 반이민 정서가 임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가짜뉴스는 무너지는 동전탑에 마지막으로 쌓인 동전과도 같았다. 삐뚤어진 민심은 르완다 출신 부모를 둔 영국 태생 범인을 무슬림 난민으로 곡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도 남의 일만은 아냐

이민자 급증으로 인한 사회 갈등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에선 작년에 아프리카계 이민 가정 출신 청소년이 경찰 총격에 숨진 뒤 이민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터졌다. 독일에서는 지난 5월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가 경찰관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이슈가 됐다.

미국에선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이민 통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021년 6월 과테말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불법 이민자들을 향해 “오지 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일이 아니다. 올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약 20만 명이었던 외국인 불법 체류자는 지난해 43만 명에 달했다.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덩달아 늘고 있다. 살인 강도 사기 등 혐의로 피의자가 된 외국인은 연평균 3만6000여 명에 이른다.

이민은 경제활동 인구를 늘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확대하는 등 순기능도 크다. 저출생·고령화에 시달리는 한국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국민의 수용성, 그리고 이민자들을 사회에 융합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민에 대한 신중론에 ‘극우 프레임’만 씌울 건 아니다. 다문화의 동전탑은 기초부터 탄탄히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