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송의 작품 ‘오비리(Oviri) 1’(2023).  /마시모데카를로 제공
루송의 작품 ‘오비리(Oviri) 1’(2023). /마시모데카를로 제공
갤러리, 미술관의 이름값과 전시회에서 내세운 작가의 명성이 불일치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무작정 감상하러 가보는 것도 좋다.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를 홀린 작가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마시모데카를로 서울스튜디오가 진행 중인 개인전 ‘오비리(Oviri) 1894’도 이런 경우다. 중국 작가 루송(42)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어지간한 국내 미술 애호가들도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홍콩 K11 예술재단, 독일 뒤셀도르프 브로너·필라라 컬렉션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회화 작가인지, 회화를 다룬다면 구상과 추상 중 무얼 그리는지 와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 화랑 마시모데카를로가 낯선 그림을 걸었다는 것. 전 세계 60여 명의 ‘전속 작가 군단’을 거느린 마시모데카를로는 마시모 데 카를로(65)가 자신의 이름 따서 1987년 설립한 갤러리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2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바로 마시모 데 카를로 사단의 일원이다.

마시모데카를로는 루송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루송의 작업은 다면성을 지닌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에게서 태어난 조각에 평면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그가 2022년부터 몰두하고 있는 오비리 연작은 고갱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타히티어로 야생 또는 야만적이라는 뜻을 담은 오비리는 원시 자연을 예찬하며 문명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고갱이 빚은 여신상이다. 마티스, 피카소 같은 거장들에게 영감을 준 고갱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루송은 기하학적 형태와 거칠고 이국적인 색상을 통해 고갱의 원초적 특색을 재해석했다. ‘오비리 2’는 추상화를 그리던 루송의 화법에 구상이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재밌다.

마시모데카를로 관계자는 “루송의 작품은 처음엔 거칠고 제멋대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며 “그의 작품을 해독하고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사람과 사물의 다면적인 본질을 재고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관람하려면 사전 예약해야 한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