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 단지. /사진=김영리 기자
은마아파트 단지. /사진=김영리 기자
"올해로 여기 산 지 10년 됐어요. 대치 입성은 초3 되기 전에 하래서요. 첫째 10살 때 왔는데 지금 딱 고3이네요."

은마아파트에 전세로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40대 직장인 A씨는 고3, 중2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A씨처럼 자식 교육 때문에 대치동 입성을 노리면서도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예비 '대치맘'들에게 은마는 적극적으로 입주를 검토해 볼만한 단지다.

대치동 메인 학원가와 휘문중·고등학교를 걸어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누가보더라도 최대 강점이다. 대치동·개포동 일대에서 학생들 입장에서 이 정도 입지적 장점을 갖춘 단지는 거의 없다.

다른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주거비도 장점이 될 수 있다. 1979년에 입주한 구축 단지로 전체 가구 수가 4424가구에 달해 전셋값이 싸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주차, 엘리베이터 이용 등 젊은 부부들이 살기에는 상당한 불편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젠 은마에 적응이 됐다"는 A씨도 이 단지의 장점으로 '가성비'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이 가격대 대치동 30평대 대단지 아파트는 이곳이 유일하다"면서 "횡단보도도 거의 건너지 않고 아이 학교·학원·도서관, 지하철역, 반찬가게, 마트를 누릴 수 있는 곳도 드물다"고 설명했다.

학원가와 가장 가까운 대단지

한보은마아파트 북문에서는 대치동 학원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보은마아파트 북문에서는 대치동 학원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1979년에 입주를 시작한 은마아파트는 지상 14층, 4424가구, 28개동 규모로 서울 강남구 대치2동에 지어졌다. 외관 상으로는 세월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입지적 여건만 따지면 대치동 안에서도 최고의 교육 환경으로 꼽힌다.

은마아파트는 101㎡와 115㎡ 두 가지 면적으로만 구성돼있다. 전세가는 6억 후반대에서 10억원을 호가한다. 매매가는 24억~29억원대다.

서민들 넘보기엔 간단치 않은 아파트지만, 자녀교육을 위해선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학부모 입장에선 그나마 대치동에서 1순위로 입주를 고려해볼만한 단지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학원가와 가깝고 은마보다 단지 컨디션이 나은 단지로는 대치현대아파트, 대치삼성아파트, 대치효성아파트 등도 있다. 다만 가구수가 수십 가구에 불과한 '미니' 단지들이 상당수여서 매물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방 3개짜리 100㎡대를 알아보려면 전세가가 13억원 이상으로 확 뛴다.
마트와 학원, 반찬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은마상가와 아파트들. /사진=김영리 기자
마트와 학원, 반찬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은마상가와 아파트들. /사진=김영리 기자
교육환경 측면에서는 이 일대 대단지 아파트에서 은마아파트만큼 가깝게 대치동 학원가를 누릴 수 있는 곳도 딱히 없다. 대치동 '대장'으로 꼽히는'래미안대치팰리스 1, 2단지'에서 '시대인재' 학원이 있는 은마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도보로 12~15분가량 걸린다. 하지만 은마아파트는 가장 가까운 16동의 경우 도보 2분, 가장 먼 1동도 단지 내에서 움직이면 10분으로 충분하다.

은마아파트 '로얄 매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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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동수가 28개동에 달하는 은마아파트의 단지 내 '로얄동'은 어느 초등학교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은마는 단지 규모가 크다 보니 단지 정가운데를 남북으로 나눠 초등학교를 배정한다.

북쪽에 배치된 13개동은 대현초, 남쪽으로 배치된 15개동은 대곡초로 간다. 이중 선호도가 높은 학교는 거리상 더 가까운 대곡초다. 대치역 4번 출구를 통하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등교가 가능하다. 대곡초는 은마아파트 13개동과 미도 1, 2차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만 배정돼 비슷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친구 두기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에게 더 인기다.

대현초는 대치쌍용1,2차, 대치우성1차, 대치현대아파트, 대치래미안 하이스턴, 대치르엘아파트, 대치푸르지오써밋, 삼성역 부근 주택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배정돼 아이들의 구성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A씨는 "은마아파트에 이사 올 당시 집을 알아보며 '서울대 의대 보낸 집'과 같은 홍보 문구도 봤다"며 "은마에 사는 젊은 학부모의 90%이상은 교육 때문에 이사온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에 누가, 왜 살까

/사진=김영리 기자
/사진=김영리 기자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도 "은마 전·월세 수요의 95% 이상은 교육 목적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은마 인근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 B씨는 "간혹 '언젠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자녀 교육 겸 소위 '몸테크'를 각오하고 매매 후 내부를 몽땅 수리해 입주하는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도 있다"고 전했다.

취재과정에서 이곳에서 만난 실거주자들도 모두 "자녀 교육을 위해 입성했다"고 밝혔다. 50대 직장인 C씨는 "강동구에 자가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녀 교육 문제로 이곳에 전세로 살고 있다"며 "맞벌이 부부가 현실적인 비용으로 대치동에 입성할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주 전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살아보니 불편함이 없다"며 "자녀가 대학에 갈 때까지는 계속 거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파구 잠실동, 양천구 목동, 성남 분당구 등에 자가를 두고 아이의 학원가 이용을 위해 은마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대치동 입성 전 이 일대 학원가를 이용하다가, 차라리 들어와 살겠다고 결심하는 이른바 '라이드 포기족'이다.

심지어 자동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인 매봉역이나 도곡동에 살다가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서 이 단지로 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40대 D씨는 "'시간이 금'인 수험생 입장에선 도곡동도 멀다. 학원 끝나는 시간마다 워낙 막혀 도곡동까지 차로 30분도 걸린다"며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느니 잠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사를 하는 게 낫다. 주변 학부모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고 전했다.

자식의 대치동 입성을 위해 은마를 보유하고 있는 70~80대 노부모 집에 얹혀사는 사례도 많다. 공인중개사 B씨는 "대치키즈가 부모가 돼 돌아온 '연어족'이 있다"며 "부모님 명의의 은마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3040 학부모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부모가 이미 대치동에서 다주택 소유자라, 맞벌이 부부가 은마아파트에 거주하며 손주 육아를 도움받는 사례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올수리' 홍보, 살기 좋은 집 찾는 법

오후 10시 은마아파트 단지 내 차들이 이중 주차된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오후 10시 은마아파트 단지 내 차들이 이중 주차된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낡을 대로 낡은 집 상태는 여전히 예비 대치맘들이 이곳 입주를 꺼리게 만드는 핵심요인이다. 이중주차는 기본에 밤 늦은 시간에는 삼중주차까지 감수해야하는 주차난, 실거주하기에 낡은 내부, 콘크리트 부식 등.

하지만 실거주하는 주민들은 "막상 살아보니 나쁘지 않다"고 평한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2015년 주차 공간 확보 공사로 조경을 일부 없애고 최대한 주차 구역을 늘렸으며, 2020년 상수도 배관 공사로 녹물도 안 나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0년 6월 대치동이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실거주 목적 외에는 매수할 수 없게 된 바람에 소유주들이 깨끗하게 수리한 뒤 실거주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평가다. 과거에 비해 자가 비율이 늘며 아파트 관리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이미경 대치학군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은마는 내부 상태에 따라 전셋값 편차가 큰 편"이라며 "살기 좋은 집은 9억~10억에도 거래가 성사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테리어나 단열 공사가 입주 후 한 번도 안 된 집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에는 세입자도 기피한다"며 "은마 매물을 볼 때는 차라리 비싼 가격대부터 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마아파트 매물을 찾을 때는 대부분 '올수리'라고 설명돼있기 때문에 '집주인 거주', '실거주용', '호텔식' 등과 같은 키워드가 붙은 집이 더 상태가 좋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아예 재건축 이후까지 바라보고 장기적 관점에서 매수도 고려하려는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이 곳은 이 일대서 가장 주목받는 재건축 단지"라며 "다만 용적률이 204%로 180%대의 인근 구축 아파트보다 높아 추가분담금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한다"고 했다.
"서울대 의대 보낸 집"…대치동 '가성비' 아파트 인기라는데 [대치동 이야기 ⑱]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