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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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가 A씨는 K항공사(이하 K사)를 이용하면서 회원가입약정(약관)을 체결해 마일리지 약 18만마일을 적립했습니다. 해당 마일리지는 인천에서 파리까지 운행하는 항공권 비즈니스석을 탑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A씨 사망 후 상속인이자 아내인 B씨는 A씨가 적립한 마일리지를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면서 K사에 A씨의 마일리지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K사는 항공 마일리지 상속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A씨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A씨와 회원가입약정을 통해 상속이 불가하다고 합의한 만큼 A씨의 항공마일리지는 그가 사망하면서 소멸했다는 게 K사의 입장입니다.

이런 경우 B씨는 남편 A씨의 항공 마일리지를 상속받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K사의 항공마일리지 제도는 상용고객 우대제도의 하나로, 이와 같은 마일리지는 일정한 조건 하에 K사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는 ‘재산적 가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마일리지 이용권은 단순한 기대권을 넘어 재산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일리지 이용권은 본래 가입회원 본인의 인격으로부터 파생되는 권리가 아니고, 가입회원이 누구인지에 따라 서비스의 변경을 초래하는 것도 아닌 만큼 귀속상 일신전속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이 가능한 권리’에 해당합니다.

마일리지 이용권이 원칙적으로 상속이 가능한 권리에 해당해도 마일리지 이용 계약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해 회원의 사망 시 마일리지가 소멸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다만 그 합의가 개별적인 합의가 아니라 K항공사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마일리지 이용약관에 따른 것일 경우 약관이 약관규제법에 반해 불공정한지 여부는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한 회원의 마일리지는 상속될 수 없고 자동 소멸된다는 K사의 약관조항은 마일리지 회원인 고객에게 보장된 마일리지 이용권 상속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인정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일리지를 지급받은 회원이 직접 마일리지를 사용하도록 제한을 가하는 것이 상용 고객을 확보한다는 마일리지 제도의 취지에 부합합니다. K사로서는 마일리지의 일정 비율을 부채성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만큼 고객이 적립한 마일리지가 늘어날수록 부채가 증가해 재무구조 건전성이 악화되므로, 마일리지가 적기에 소멸되도록 촉진할 영업상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한 K사는 회원 본인의 마일리지를 공제해 등록된 가족에게 보너스 항공권을 발급해 줄 수 있는 가족 간 보너스 양도제도와 회원 본인의 보너스를 사용하기에 부족한 경우 부족한 만큼의 마일리지를 등록된 가족으로부터 제공받아 회원 본인의 보너스 항공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가족 간 마일리지 합산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 동종업계 관행에 따르더라도 마일리지 상속을 허용하는 것이 전세계 항공사들에게 보편화된 관행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K사 약관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약관규제법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 법원도 사망과 동시에 마일리지가 소멸되고 상속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취지로 규정한 약관 규정이 약관규제법에 해당해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서울남부지법 2011. 2. 18. 선고 2018가합15876 판결).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항공 마일리지의 양도와 상속을 금지하는 조항이 약관규제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B씨는 사망한 남편 A씨의 마일리지를 상속받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K사처럼 마일리지 합산이나 양도, 본인이 아닌 타인의 사용 등을 약관을 통해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항공사들은 가족합산제도를 통해 마일리지 사용을 유도하고 있으나 상속의 경우 마일리지를 아예 양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허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항공사 마일리지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약관을 꼼꼼하게 체크해 그동안 적립만 하고 사용하지 못했던 항공 마일리지를 현명하고 슬기롭게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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