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세 번째 여름휴가도 고달팠다. 휴가 기간 국내 주식시장 '폭락'에 역대급 '폭염'까지 겹치면서 야권의 맹공을 받은 탓이다. "대통령의 휴가까지 악담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야권 내 자성도 나왔지만, 야당의 대통령 휴가 비판은 매 정권 반복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막 돌입한 지난 5일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윤 대통령의 휴가 조기 복귀를 촉구했다.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무책임하게 휴가지에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전례 없는 폭염도 휴가 중인 윤 대통령에게 화살이 돼 날아갔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휴가 중인 윤 대통령은 폭염 대책을 마련하라"며 "재난 수준의 폭염과 민생고로 국민들은 고통받는데, 대통령께서는 휴가지에서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실지 궁금하다"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대통령님만 안녕하시죠? 주식시장 역대 최대 하락, 미국발(發) 경제위기 신호, 중국 러시아 관계 악화 제한적 수출 판로, 이스라엘-이란 전면전 위기, 통영시장 해산물은 맛있으셨는지?"라는 당 홍보 게시물을 공유했다. 윤 대통령이 휴가 중 통영중앙시장을 방문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휴가 첫날인 5일 오후 경남 통영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휴가 첫날인 5일 오후 경남 통영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
일부 야당 의원들의 비판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은 유유자적의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윤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상시로 참모진들로부터 현안에 대해 보고받고, 주요 결정 사안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결재했다. 지난 6일에는 전자결재로 이숙연 대법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특히 야당이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 상황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기민한 대응'을 지시한 데 이어, 지난 6일 개장 전 경제부총리 주재 거시경제금융 현안간담회(F4 회의)를 열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은 장중에도 정책실장을 통해 주가·환율 등 시장지표 전반에 대한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고받고, 관계 기관들의 긴밀하고 선제적인 공조 대응을 당부했다"고 했다.

야당의 대통령 휴가 비판은 오늘내일만의 일이 아니다. '나라가 난리인데 지금 대통령이 휴가를 갈 상황이냐'는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직전 대통령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를 돌이켜보자. 2017년, 문 전 대통령의 휴가 하루 전날인 7월 28일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예정보다 늦게 휴가를 떠났다. 그런데도 "안보까지 휴가 보낸 문재인 정부"(국민의당), "대한민국 안보는 휴가 중"(바른정당), "이런 정부를 믿고 안보를 맡겨도 되는지 걱정"(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온갖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휴가 징크스'라는 말도 있다. 윤 대통령의 이번 휴가에는 주식시장 '폭락'이, 문 전 대통령의 첫 휴가에는 북한의 '폭탄'이 방해했던 것처럼, 역대 대통령의 휴가 때마다 나라에 악재가 터져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여파로 여름휴가를 청와대에서 보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정국, 2006년 북한의 무력 도발, 2007년 한국인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으로 세 차례나 휴가를 가지 못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여름휴가를 반납했었다.

매 정권 야당의 대통령 휴가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노동자의 쉼에 인색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정쟁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제는 이런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야권 인사인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6일 한 유튜브에서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것까지 굳이 악담을 할 필요는 없다"며 "지금 우리 정치권은 서로 어떻게 하면 아프게 말할까 연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4박5일 간 여름휴가를 마치고 9일 오후 복귀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