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박태준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 이 또한 지나간다. 시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까짓 일로 죽기야 하겠나.” 박태준(20)의 휴대폰 배경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내 운을 확 끌어올리는 행운의 말버릇”이라고 한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마다 자신만의 ‘행운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친 박태준이 또 하나의 벽을 깨고 한국 태권도의 새 역사를 썼다.

○“반드시 해낸다” 행운의 주문 외워

'윙크보이' 박태준, 韓 태권도 8년 노골드 수모 씻었다
세계랭킹 5위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가심 마고메도프(26위·아제르바이잔)를 상대로 기권승을 거둬 정상에 올랐다. 한국 태권도가 해당 체급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이대훈(32·대전시청 코치)이 따낸 은메달이 최고 성적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도쿄 대회에서는 김태훈(30)과 장준(24)이 동메달에 그쳤다. 한국 태권도의 새 역사를 쓴 박태준은 “20년을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내 선수 생활이 담긴 금메달”이라고 기뻐했다.

3년 전 도쿄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겪은 태권도 종주국 한국은 리우 대회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수확해 자존심을 세웠다. 특히 한국 남자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손태진(68㎏급), 차동민(80㎏ 초과급) 이후 16년 만이다.

박태준은 12년 전 같은 체급에서 은메달을 딴 이대훈을 보며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은 그는 태권도 전설 이대훈을 닮고 싶어 이대훈 모교인 한성고에 입학했다. 이대훈이 모교를 방문할 때마다 지도를 받은 박태준은 나래차기와 돌려차기, 발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발 커트 기술까지 습득하며 고교 최고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태준의 파리행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해당 체급에는 도쿄 대회 동메달과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터줏대감 장준이 버티고 있었고, 작년 세계선수권 58㎏급 우승자 배준서(24)도 있었다. 이제 막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태준에게는 크나큰 벽이었다.

그랬던 박태준이 대표 선발전에서 기어코 일을 냈다. 올림픽랭킹을 5위까지 끌어올리며 출전 자격을 얻은 그는 지난 2월 세계랭킹 3위 장준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해 꿈에 그리던 파리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장준과의 상대 전적에서 6전 전패였던 박태준은 ‘셔틀콕 여왕’ 안세영(22)이 천적 천위페이(중국)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올림픽에서도 이변의 연속

어렵게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박태준의 금메달 전망은 밝지 않았다. 대진표상 세계랭킹 1위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와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젠두비는 3년 전 도쿄 대회 은메달리스트로 이번 대회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평가됐다. 박태준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1승 1패의 호각세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젠두비는 박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젠두비를 상대로 시종일관 공격적인 경기를 펼친 박태준은 라운드 점수 2-0(6-2 ,13-6)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박태준은 마고메도프와의 결승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1라운드를 9-0으로 승리한 뒤 2라운드에서도 13-1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1라운드 때 다친 왼쪽 정강이를 부여잡고 쓰러진 마고메도프가 기권하면서 박태준의 우승이 확정됐다.

“반드시 해낸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박태준은 남자 58㎏급 최초의 금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한국 태권도에 안겼다. 그는 “금메달을 딴 순간 그동안 준비했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순간 울컥했다”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웃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