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를 떠받치던 ‘소비의 힘’이 약해지면서 기업들이 자산 매각과 사업 구조 재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물가 상황에서 코로나19 기간 지원금 등을 받으며 쌓아둔 초과저축이 바닥나면서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서다. 갈수록 소비 둔화 우려가 확산해 하루빨리 사업 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생존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소비 지출 둔화 조짐

소비한파 주의보…美기업, 사업 떼내고 부동산 판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6월 소비자 대출은 전월보다 89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시장 전망치인 100억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토르스텐 슬뢰크 아폴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 지출의 점진적 둔화로 여겨진다”고 했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는 그간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고금리와 높아진 물가로 이젠 소비자들이 소비할 여력도, 의사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디즈니는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한 올해 2분기 실적을 내놓으면서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와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를 포함한 테마파크 사업이 수요 둔화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형·장난감 등 굿즈 판매까지 5% 줄어든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휴 존스턴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높아진 식료품 비용 등을 감당하는데, 이 때문에 다른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 둔화 조짐이 보이자 기업들은 분주하게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고 있다. 매출 악화가 시작된 사업 부문을 팔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에 힘을 더 싣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 최대 약국 체인 월그린은 1차 진료소를 운영하는 빌리지MD 사업 매각을 고려 중이다. 악화하는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123년 역사를 지닌 월그린은 미국의 대표적 약국 체인이지만 최근 실적이 저조한 매장을 대거 정리하고 있다. 처방약 등 주요 매출 동력이 힘을 잃으면서 사업 재편 없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세계 3대 골프 브랜드 중 하나인 캘러웨이는 골프 연습장 브랜드 탑골프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 실내 연습장과 술집을 결합한 탑골프는 지난해 매출만 17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캘러웨이 관계자는 “기대를 밑도는 방문객 수와 저조한 매출 때문에 수익을 정상화할 필요성이 생겼다”며 “탑골프 분사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외부 전문가와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는 최근 내부적인 자구안 마련에 분주하다. 앞으로 3년간 150개 매장을 폐쇄하고 나머지 350개 매장을 탈바꿈하는 게 핵심이다. 피팅룸과 신발 매장에 더 많은 직원을 배치하고 고급화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부동산 자산 부문을 분사하거나 온·오프라인 매장을 분리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늘어나는 인수합병(M&A) 거래

이렇다 보니 M&A 시장은 때아닌 호황을 누릴 조짐을 보인다. 컨설팅 업체 PwC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M&A 거래량은 약 2만3000건으로 집계됐다. 거래 가치는 약 1조3000억달러다. 대규모 계약이 집중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거래 가치는 5% 늘었지만 전체 거래량은 25% 감소했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 M&A 거래량과 거래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PwC 전망이다. 기업들이 비핵심 자산 매각과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주원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소매 영역 기업들이 실적 압박을 받았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의 구조조정 활동이 많아지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M&A가 늘어나는 구조”라고 내다봤다.

최근 KPMG가 미국 최고경영자(CEO)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65%(중복 응답 가능)가 올해 기업이나 사업 부문 인수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특정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수단이다. 또 사업 부문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CEO는 35%였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시장 둔화가 가속화한다면 소비 지출이 눈에 띄게 더 줄어들 수 있다”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지출 감소가 부각되면 사업 구조에 대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