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합병을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방식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불을 지폈다. 이 합병이 지배주주 이익만 좇아 일반주주의 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하지만 두산은 구조 개편 작업이 그룹 사업 역량을 높일 방안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재계에서도 금융당국의 행보에 대해 “기업의 합법적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막겠다는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이복현 금감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이복현 “제한 없이 정정 요구할 것”

이 원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두산그룹 구조 개편과 관련한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지속해서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산 계열사가 제출한 첫 번째 증권신고서에 구조 개편의 효과와 위험 등이 충분히 기재됐는지를 봤다”며 “일반주주의 주주권 행사 과정에 필요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지속해서 정정 요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25일 두산그룹 구조 개편 과정에 필수적인 증권신고서의 정정을 한 차례 요구했다. 이 원장이 재차 보완을 요구할 뜻을 밝히면서 두산그룹 구조 개편 작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12일 두산그룹은 건설장비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로봇 계열사인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넘기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두산밥캣을 기존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낸 뒤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구조다. 두산로보틱스는 이어서 신주를 발행해 두산밥캣 주주의 잔여 지분 전부와 맞교환한다. 주식 맞교환 과정에서 두산밥캣 보통주 1주당 두산로보틱스 보통주 0.6주를 지급한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기업가치를 각각 5조700억원, 5조1900억원으로 추산해 산출한 교환 비율이다.

이 같은 교환 비율을 놓고 두산밥캣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을 올린 두산밥캣의 기업가치를 같은 기간 적자를 낸 두산로보틱스와 엇비슷하게 산출한 것은 문제라는 논리다.

○두산 “사업 역량 강화 위한 것” 항변

두산그룹은 주주 반발과 금융당국 제동에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지난 4일 각 사 홈페이지에 올린 주주서한을 통해 계열사의 사업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스캇 박 두산밥캣 대표는 주주서한에서 “건설 장비의 무인화·로봇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두산로보틱스와의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1위 건설장비 업체인 캐터필러가 2020년 로봇업체인 마블로봇을 인수한 사례 등을 거론했다.

재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개입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른바 ‘정서법’을 바탕으로 합법적인 두산그룹의 합병 작업에 과도한 개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두산그룹도 주주와의 소통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구조 개편 작업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원장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은 “금투세로 20% 세율을 부담하지만 집합 투자기구는 (분배이익에 대한 세율이) 50%가 적용되는데 이것이 전문가를 믿고 장기 간접투자를 하는 흐름과 맞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고 했다.

최근 주가가 급락한 점에 대해서는 “과거 위기 상황에 비춰 환율, 자금시장, 실물 경제의 급격한 다운턴(하락 전환)과 병행되지 않아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