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가 미국 첫 공장 가동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만 특유의 상명하달식 기업 문화와 격무를 둘러싸고 미국 직원과 대만 경영진이 충돌하면서다. 삼성전자는 1996년부터 미국 공장을 운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테일러 신공장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어 대조된다.
"상명하달식 기업문화 싫다"…TSMC 美 공장 떠나는 미국인
뉴욕타임스(NYT)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TSMC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기도 전에 직원들의 퇴사가 잇따르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TSMC는 한밤중에도 출근하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은데, ‘칼퇴근’과 ‘수평 문화’에 익숙한 미국 직원들이 대만식 기업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닉스 공장은 650억달러(약 90조원)가 투입되는 TSMC의 미국 첫 생산시설이다. 당초 올해부터 1공장에서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가동 시점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NYT는 “미국 근로자와 경영진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TSMC의 업무 강도는 격무가 흔한 대만 내에서도 악명이 높다. 모리스 창(장중머우) 창업자는 지난해 TSMC의 성공 요인을 언급하면서 “새벽 1시에 기계가 고장 나면 미국은 오전 8시 출근해 수리를 시작하지만 대만 엔지니어는 새벽 2시까지 수리를 마친다”며 “남편이 새벽에 돌아와도 아내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TSMC는 미국 공장이 착공한 2021년부터 미국 엔지니어들을 대만에서 1~2년간 연수시키며 기업 문화를 배우게 하고 있다. 미국 매체 레스트오브월드에 따르면 많은 미국 직원은 대만 연수를 ‘악몽’으로 기억하고 있다. 훈련을 명목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당일 과제’를 부여하고, 대만식 위계질서를 가르쳤다. 레스트오브월드는 “가혹한 훈련을 하는 것은 가정보다 회사를 우선시하라는 목적인데, 미국 직원들은 이런 문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직원들이 떠나가면서 TSMC 애리조나 공장은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2200명이 일하고 있는데 미국인으로 채우지 못해 절반을 대만에서 데려왔다. 애리조나 공장 완공 이후 필요한 근무 인력은 6000명이다. TSMC는 현지 대학과의 교류, 미국 문화 이해 등을 통해 점차 미국인 비중을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1996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공장을 운영해온 삼성전자는 테일러주 신공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30년간의 노하우를 통해 미국 직원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현지 인력을 조달하는 네트워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TSMC와 경쟁하는 삼성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은 2026년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