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감세 정책을 부자 감세로 매도…질투의 경제학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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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
강만수 지음 / 삼성글로벌리서치
748쪽|4만5000원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 회고록
韓 꾸준한 감세 덕에 세입 늘어
감세땐 GDP 증가 연구 결과도
돈만 뿌린다고 경제 안 살아나
땀 흘리는 '다이어트 경제' 필요
관료는 포퓰리즘 가장 경계해야
강만수 지음 / 삼성글로벌리서치
748쪽|4만5000원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 회고록
韓 꾸준한 감세 덕에 세입 늘어
감세땐 GDP 증가 연구 결과도
돈만 뿌린다고 경제 안 살아나
땀 흘리는 '다이어트 경제' 필요
관료는 포퓰리즘 가장 경계해야
강만수 전 장관(사진)만큼 욕 많이 먹은 관료도 드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한 그는 고환율 정책을 펴다가 민생과 물가를 외면한다는 이유로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십자포화를 맞았다. 그의 감세 정책은 ‘부자 감세’로 몰렸다. 낡은 정책을 펴는 ‘올드 보이’라는 비난과 함께 경질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임기를 1년도 못 채우고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야 했다. 앞서 1997년 외환위기 땐 재정경제원(기재부 전신) 차관으로 있다가 ‘국가 부도’ 책임을 지고 사표를 썼다. 두 번의 ‘불명예’ 퇴진은 그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가 재평가받은 것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오면서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충격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2009년부터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전환과 V자 회복에 성공하며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한국이 세계 7대 수출 대국에 오르고 국가신용등급에서 일본을 제치고 주요 20개국(G20) 일원으로 국제무대에서 ‘룰 메이커(규칙 제정국)’로 도약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빠르고 단호한 재정금융정책을 거론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교과서적 사례”라고 극찬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가 경상수지 방어와 성장에만 매달리다가 민생과 물가를 소홀히 했다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최근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은 맥 빠지는 회고록이 아니라 논쟁적 측면이 다분한 책이다. 금융위기 대응에 대한 그의 회고만 봐도 그렇다. “위기와 싸우는 것보다 한국은행, 미국 경제학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한국은행은 금리, 환율, 물가 모두 다 반대로 나갔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 환율 방어나 경상수지 적자에 목맬 이유가 별로 없다. 물가 안정 속에서 완전 고용을 이루는 대내균형을 우선해도 된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다르다. 달러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환율 안정과 경상수지 방어, 즉 대외균형이 최우선 과제다. 환란을 겪으면서 체득한 교훈이자 금융위기 때 비난을 무릅쓰고 추진한 정책이다. 그가 한은과 미국 경제학을 비판한 것은 한국 현실과 맞지 않게 대내균형을 우선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학의 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높고 단단한 게 현실이다. 다시 위기가 닥쳐도 어떤 정책을 채택하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감세 정책도 뜨거운 감자다. 그는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크리스티나 로머의 실증연구를 토대로 “1달러의 감세가 3달러의 GDP(국내총생산)를 증가시켰다”고 적었다. 한국도 1980년대 이후 꾸준히 감세 정책을 쓴 결과 세입이 증대했다고 했다. 그런 감세 정책을 ‘부자 감세’로 매도하는 것은 질투의 경제학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기의 본질을 “소득을 넘는 과잉 소비와 저축을 넘는 과잉투자로 만들어진 비만 경제”라고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는 “돈을 뿌린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면 좋은 인쇄기만 있으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으랴”고 반문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더 일하고, 더 저축하고, 더 투자하는 것” “수고하고 땀 흘리는 다이어트 경제”가 거품을 막는 근본 해결책이란 게 그의 결론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와 함께 후배 공직자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며 일을 피하는 관료를 싫어했다. 그런 관료는 무능한 관료보다 더 문제라고 했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이며 그 비용을 줄이려면 관료가 사명감과 패기를 갖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관료가 대중에 영합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2005년과 2015년에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한데 묶어 정리한 책이다. 1970년대 부가가치세를 시작으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금융시장 개방,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거쳐 온 격변과 그 과정에서 한 경제 관료가 겪은 성취와 고뇌, 통찰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 한국 경제의 굴곡과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업무일지 등을 토대로 채워 넣은 547개의 주석은 ‘실록’으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
그가 재평가받은 것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오면서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충격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2009년부터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전환과 V자 회복에 성공하며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한국이 세계 7대 수출 대국에 오르고 국가신용등급에서 일본을 제치고 주요 20개국(G20) 일원으로 국제무대에서 ‘룰 메이커(규칙 제정국)’로 도약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빠르고 단호한 재정금융정책을 거론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교과서적 사례”라고 극찬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가 경상수지 방어와 성장에만 매달리다가 민생과 물가를 소홀히 했다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최근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은 맥 빠지는 회고록이 아니라 논쟁적 측면이 다분한 책이다. 금융위기 대응에 대한 그의 회고만 봐도 그렇다. “위기와 싸우는 것보다 한국은행, 미국 경제학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한국은행은 금리, 환율, 물가 모두 다 반대로 나갔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 환율 방어나 경상수지 적자에 목맬 이유가 별로 없다. 물가 안정 속에서 완전 고용을 이루는 대내균형을 우선해도 된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다르다. 달러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환율 안정과 경상수지 방어, 즉 대외균형이 최우선 과제다. 환란을 겪으면서 체득한 교훈이자 금융위기 때 비난을 무릅쓰고 추진한 정책이다. 그가 한은과 미국 경제학을 비판한 것은 한국 현실과 맞지 않게 대내균형을 우선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학의 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높고 단단한 게 현실이다. 다시 위기가 닥쳐도 어떤 정책을 채택하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감세 정책도 뜨거운 감자다. 그는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크리스티나 로머의 실증연구를 토대로 “1달러의 감세가 3달러의 GDP(국내총생산)를 증가시켰다”고 적었다. 한국도 1980년대 이후 꾸준히 감세 정책을 쓴 결과 세입이 증대했다고 했다. 그런 감세 정책을 ‘부자 감세’로 매도하는 것은 질투의 경제학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기의 본질을 “소득을 넘는 과잉 소비와 저축을 넘는 과잉투자로 만들어진 비만 경제”라고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는 “돈을 뿌린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면 좋은 인쇄기만 있으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으랴”고 반문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더 일하고, 더 저축하고, 더 투자하는 것” “수고하고 땀 흘리는 다이어트 경제”가 거품을 막는 근본 해결책이란 게 그의 결론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와 함께 후배 공직자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며 일을 피하는 관료를 싫어했다. 그런 관료는 무능한 관료보다 더 문제라고 했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이며 그 비용을 줄이려면 관료가 사명감과 패기를 갖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관료가 대중에 영합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2005년과 2015년에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한데 묶어 정리한 책이다. 1970년대 부가가치세를 시작으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금융시장 개방,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거쳐 온 격변과 그 과정에서 한 경제 관료가 겪은 성취와 고뇌, 통찰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 한국 경제의 굴곡과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업무일지 등을 토대로 채워 넣은 547개의 주석은 ‘실록’으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